[김혜인의 반걸음 육아8] 대학 병원에만 가면

[교사 김혜인] 대학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다. 오전 9시 40분 예약이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서울의 아침 도로는 늘 변수가 많다.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주차 자리를 찾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겨우 주차를 마치고 옆 차에 문콕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렸다.

이제 주차장에서 한 층만 올라가면 되었지만 문제는 엘리베이터였다. 아이를 휴대용 유모차에 태웠는데 엘리베이터는 문이 열릴 때마다 만원 상태였다. 세 번을 그냥 보낸 뒤에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려놓고 유모차를 접었다. 낯선 곳이어서 아이는 걸으려 하지 않았다. 왼쪽 팔로 아이를 안고 오른쪽 손으로 유모차를 들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했다.

진료실 앞 대기 의자는 3개뿐인데 기다리는 사람은 많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 곳곳을 구경시키고 까꿍 놀이 비행기 타기 등 최선을 다해 아이와 놀아주었다. 좋은 컨디션으로 진료를 보게 하고 싶었다. 지난번에 발달 검사를 했을 때 평소에 잘 수행하던 것도 좀처럼 하지 않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료는 1시간 30분 지연되었다. 분명 평소 낮잠 시간보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잘 놀던 아이가 슬슬 졸린 기색을 보였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숨겨 두었던 간식을 꺼내 먹이며 아이를 좀 더 버티게 했다. 드디어 간호사가 아이를 호명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아이는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막 잠이 든 아이를 깨우니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의사는 아이가 잠투정을 그치고 진료실 안을 둘러 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곧 아이를 관찰하며 내게 여러 상호작용을 지시했다. 아이 이름을 불러보라 했다. 아이가 반응이 없다. 의사가 아이에게 엄마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역시 반응이 없다. 아이에게 이리 와보라고 했다. 아이는 진료실을 아주 천천히 걸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보여 주었다. 잠깐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이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때 가장 우려한 것은 상호작용이었다. 사회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눈 맞춤이 적고 모방 행동을 안 해 걱정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아이는 유독 대학 병원 진료실 안에서는 잘하던 것도 안 한다.

소아재활과나 소아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왜 비타민 사탕을 준비해 두지 않을까. 왜 벽에 뽀로로 그림이라도 좀 붙여 놓지를 않은 걸까. 대학 아동 병원은 전혀 아동 친화적이지 않다.

병원에서 발달 지연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여러 이야기를 듣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깊이 잠들었다가 개운하게 일어났다. 집 안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신나게 논다. 그러잖아도 또래보다 발달이 느린데, 진료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더 느리게 진단받는 것만 같아 속상했다. 이런 나의 마음도 모른 채 아이는 마냥 기분이 좋다.

친정엄마가 오셔서 오늘 진료가 어땠냐고 물으셨다. 호명 반응조차 없었다고 말하며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이는 대번 쳐다본다. 엄마가 어디 있냐고 묻자 내게 다가온다.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이놈 다 알아들으면서. 속은 멀쩡하다니까. 속에 영감 들었어.”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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