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아, 나도 어릴 때…”
KIA 타이거즈가 이범호 감독을 선임하기 직전이던 13일 오전이었다.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 도중 지나가던 최형우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제2의 최형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KIA로선 중요한 주제다.
최형우에게 듣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순간 KIA가 광주에서 이범호 감독 선임 보도자료를 보내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최형우는 “아, 나도 어릴 때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라고 했다.
삼성왕조 시절, 젊은 해결사로 떠오를 때 롤모델을 묻는 질문이나 어떤 ‘제2의 OOO’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성심성의껏 대답은 했지만, 최형우는 ‘제2의 OOO’보다 ‘제1의 OOO’이 중요한 걸 잘 안다.
이미 KBO리그에도 20대 초~중반의 ‘영 MZ’들은 ‘제2의 OOO’을 썩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제2의 이승엽이란 별명이 있는 외야수 김석환은 작년 애리조나 투손 스프링캠프에서 그 별명이 영광이지만, 자신은 제1의 김석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역시 제2의 이종범이란 별명이 있는 내야수 김도영도 누가 묻지 않으면 굳이 이종범 전 LG 트윈스 코치를 거론하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를 넘어 KBO리그, 한국야구의 ‘영 아이콘’이 된 문동주와 노시환 역시 제2의 류현진, 혹은 제2의 김태균이란 언급을 굳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들을 최형우에게 하자 웃더니 “나도 그런 게 좋은 것 같다”라고 했다.
이달 초 한화 멜버른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현역 최고령 김강민(42)도 “결국 자기 야구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외야수 최인호에게 남들이 본인에게 해주는 얘기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게 훨씬 중요하며, 결국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최형우도 KIA 후배들에게 살갑게 야구 얘기를 잘 해준다. 한화가 류현진에게 기대하는 효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건 후배들의 몫이며, 듣고 흘려버리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다. 성공한 대선배의 얘기를 100% 수용해야 한다면, 그것도 선입견이다. 각자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야구가 그 선배와 엄연히 다르다.
이범호 감독은 캔버라에서부터 “선수들이 눈치보지 말고 자기 야구를 하면 좋겠다”라고 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달라는 얘기였다. 쓰임새는 어차피 감독이 판단한다. 인재의 풀이 야구강국들보다 적은 한국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개개인의 야구 개성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관성적인 따라하기는 개개인의 역량과 개성, 장점이 오히려 억제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양성이 미래의 동력이자 경쟁력일 수 있다.
물론 성공한 선배를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따라할 필요도 있다. 최형우, 김강민, 류현진 모두 그럴 자격이 있는 롤모델들이다. 그러나 그걸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건 오직 선수 자신이다. 자신에게 맞는 야구를 찾아 성공하는 게 가장 가치 있다.
최형우는 굳이 제2의 최형우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눈치였다. ‘제1의 OOO’이 최형우보다 더 대단한 스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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