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12] 식권 한 장 ‘빠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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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와 함께 나가사키는 원폭 피해를 입은 도시이다.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원폭 폭심지 공원’이 있고, 그 근처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평화공원에 설치된 사진 속 남자 조각상은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신양란 작가

[여행작가 신양란] 아침 식사가 포함된 호텔의 경우, 식당 입구에서 방 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확인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고 식권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체크인할 때 숙박 일수에 맞춰 한꺼번에 주고 식사 때마다 한 장씩 내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 호텔에서 그렇게 하므로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혼자 떠났던 일본 나가사키 여행 때 묵었던 ‘나가사키 버스 터미널 호텔’은 그게 당연하지 않아서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나가사키 공항에 아침 9시에 착륙했다.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10시 남짓. 두 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다니 그때까지는 네 시간 가량 공백이 생겼다.

나는 직원에게 미리 숙박비를 내겠다고 말했다. 가방을 맡기고 돌아다닐 예정이니, 기왕 낼 돈은 먼저 내는 게 나았다. 직원은 돈을 받은 다음, “내일 아침 식사는 일본식으로 할 건지, 서양식으로 할 건지”를 물었다. 나는 일본식으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냥한 그 직원은 식권 한 장을 내주었고, 주는 거니까 나는 별생각 없이 받았다.

필자가 나가사키 여행 때 묵었던 나가사키 버스 터미널 호텔/신양란 작가

두 시가 되어 체크인할 때는 다른 직원이 나를 맞았다. 그는 방 열쇠와 아침에 맡긴 내 가방을 내주며 “내일 아침 식사는 일본식으로 할 건지, 서양식으로 할 건지”를 물었다. 나는 “그건 아까 숙박비 낼 때 말하고 식권을 이미 받았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본어로도 영어로도 그렇게 긴 문장은 말할 줄 몰라서 그냥 “일본식으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내게 식권을 한 장 주었다. 나는 그것을 또 별생각 없이 받았다.

이후 방에 들어가 생각해보니, ‘이 호텔에서 사흘을 묵을 건데 식권을 두 장 밖에 못 받았으니 나머지 한 장은 언제, 누구한테 받아야 하나.’ 싶었다. 말이 통하면 직원에게 물어보면 간단하겠지만, 영어도 일본어도 할 줄 모르니 난감한 문제였다.

그날 밤 9시 무렵, 호텔 직원이 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식권 한 장을 왼손에 쥐고 흔들면서 오른손 검지를 세워 보이며 일본말로 한참을 설명했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을 중간중간 섞어가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의 장황한 말을 짐작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 한 손에는 식권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검지를 세웠으니, 그 둘을 합치면 ‘식권 한 장’이라는 뜻이 분명하였다. 여기에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자꾸 “스미마셍”이라고 하는데, 호텔 측에서 식권 문제로 나한테 미안할 일이라면 식권 한 장을 덜 준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이 “당신에게 식권 한 장을 덜 주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뜻일 거라고 이해했다.

안 그래도 식권 한 장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난감했는데, 자신들 실수를 깨닫고 방으로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면서 건네주려고 하니 일본인은 참으로 친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네버 마인드(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라고 말한 뒤, 그의 손에 들린 식권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더욱 울상이 되는 게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못하던 그 직원은 잠시 뒤 식권을 다시 흔들며 “빠꾸, 빠꾸!”라고 외쳤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듣지 못했을 단어 ‘빠꾸’.  영어 ‘백(되돌리다)’의 일본식 표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일본인 입으로 들으니 어찌나 신기하고 우습던지.

내가 뒤늦게 ‘아, 식권 한 장을 돌려달라는 말인가 보다’ 짐작하고 지갑에서 꺼내주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활짝 웃는 것이었다.

필자가 나가사키 여행 때 묵었던 나가사키 버스 터미널 호텔

알고 보니 나가사키 버스 터미널 호텔은 식권을 전날에 한 장씩 주는 시스템이었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고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들은 그렇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내가 하루에 식권 두 장을 받아 착오가 생겼고, 직원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왔는데 나는 나머지 한 장을 주려고 온 줄 알고 그걸 받으려 했으니 얼마나 우스운 상황이었던가.

여행하며 말이 잘 통해 수월했던 기억보다는 이렇게 당혹스럽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더 재미있으니, 나가사키 방문도 꽤 쓸 만한 소재거리가 되어주었다.

/여행작가 신양란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나가사키를 방문한 여행자를 환영하는 나가사키 공항의 간판. /신양란 작가

이곳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음식인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 식당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명소였다. /신양란 작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전차가 나가사키에서는 여행자의 편리한 발이 되어준다. /신양란 작가

나가사키는 일본이 개항하기 전, 서양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현재도 데지마(교역이 이루어지던 인공 섬)가 보존되어 있고, 미니어처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아 옛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신양란 작가

나가사키에 정착한 서양인들이 살던 외인촌인 구라바엔은 이국적인 건물과 정원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신양란 작가

그리스도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일본에서는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보기 힘든데, 나가사키에는 그리스도교 전래 초기에 순교한 26명의 성인을 기리기 위한 오우라 천주당이 있다./신양란 작가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공동 납골묘.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혐오시설에 해당하는 대규모 납골묘가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신양란 작가

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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