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저자: 리나 구스타브손 |갈매나무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유소영]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한 돼지 눈을 보고 나서이다.
나는 난생처음 돼지 눈을 자세히 보았다. 돼지 눈은 작을 줄 알았는데 크고, 깊고, 슬펐다.
보통 선하고 슬픈 눈 하면 소 눈을 떠올리지 않나. 소 교감 능력이 개보다도 더 높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소 눈은 정말 크고, 속눈썹도 길어서인지 매우 정감 있고 때론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큰 눈이라면 인간 마음도 금방 읽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돼지 눈도 그랬다. 나는 육식주의 사회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가는 축산동물 기록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스웨덴 수의사였던 저자가 국립식품청 수의직 공무원으로 지원한 뒤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써 내려간 85일간의 기록이다. 그는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맡은 임무는 도축 과정에서 동물 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동물 복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도축장은 여전히 처참한 죽음의 공간이다. 하루는 저자가 계류장에서 돼지를 심하게 때리는 기사에게 보다못해 한마디 한다. “그렇게까지 때릴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기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매주 열리는 수의사 미팅에서 계류장 직원의 돼지를 모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구박만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저자는 주위 수의사로부터 “신참임을 이용해서 허용되지 않은 방식의 몰이 채 사용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요” “돼지가 매질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육질이 떨어지고, 등에 구타 흔적이 남으면 고기를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세요” 등 조언을 들으며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또다시 매 맞는 돼지들을 보게 된다. 돼지도 죽음의 길을 안다. 이산화탄소 가스실로 가는 마지막 통로에선 모든 돼지가 돌아서서 버틴다. 저자가 자리를 뜨면 돼지는 얼른 가스실로 들어가라고 또 매를 맞는다.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돼지들은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저 고기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 위해 도축장에 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고기가 되러 가는 길에도 매를 맞는다.”
사실 나는 ‘복 받은 스웨덴 돼지’보다 우리나라 돼지 상황을 쓰고 싶었다. 한국 돼지도 계류장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하지만, 전기봉을 맞고 쫓겨간다.국내에서는 돼지를 도축하기 전에 타격해 기절시키거나 전기로 기절시킨다. 그런 다음 방혈(피를 빼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전기로 기절시키는 경우 열 마리 중 한 마리는 다시 깨어난다. 전기 기절 방식은 돼지 크기에 따라 완전히 기절이 안 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즉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축 당한다.
현재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는 명백히 전기봉 사용 금지가 명문화돼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유도하고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구악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도축 전에도 돼지는 고통받는다. 도축을 위해 오랜 시간 이송되고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굶주린다.
그래서 ‘비질(Vigil)’이라는 활동이 있다. 죽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소와 돼지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을 먹인다. 비질은 이러한 고통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이다.
아니타 크라이츠(캐나다 동물권 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 설립자)는 어느 날 산책 중 도로 위에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이 밀려 있는 것을 보았ㄴ다. 당장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굶주리고 있을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후 돼지뿐 아니라 소, 닭 등 다른 농장 동물 고통을 증언하는 집회로 확장되면서 비질이 전 세계로 확산했다. 이 활동은 2019년부터 한국에서도 열리고 있다.
한국 돼지 삶과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향기·은영·섬나리 저, 호밀밭)로 축산업에서 공개 구조(누군가는 ‘절도’라고 불렀다)된 아기 돼지 새벽이 이야기다. ‘고기’일 뿐이던 축산동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정말로 행복한 돼지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면 놀랄 것이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북에디터 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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