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정녕 ‘프로권투 시대의 끝인가?’ 마이크 타이슨과 제이크 폴의 시합은 해 질 녘으로 가는 권투를 상징하고도 남았다. 그것은 ‘향수’를 판 ‘쇼’였다. 진정한 승부가 없었다. 프로권투가 맨주먹 투혼의 스포츠에서, 살아남기 위한 연예오락 행사로 변질했음을 보여주었다.
프로권투의 시작은 돈을 건 맨주먹 싸움이었다. 야수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원시의 매력. 그것은 밑바닥 이민자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거저 웃고 즐기는 연예오락이 아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1860~1870년대에 뉴욕과 보스턴에서 맨손으로 싸웠다. 목숨 걸다시피 한 치열함과 절박함으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그 매력으로 권투는 100년이 넘도록 미국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세계의 스포츠가 되었다.
1981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던 무하마드 알리가 권투를 떠났다. 대중을 끌어들이는 흥미롭고 강렬한 인물이 사라졌다. 인기가 주춤해졌다. 그러나 1985년 나타난 타이슨은 ‘KO 예술가’였다. 28번 싸워 26번을 KO로 이기며 세계 헤비급 정상에 섰다. ‘새로운 왕’이 탄생하면서 권투는 다시 살아났다.
“봐주기 위해 일부러 타이슨을 때려눕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핵주먹’에 ‘지구에서 가장 무서운 남자’였다 하더라도 58세 타이슨에게서 무엇을 기대했겠는가? 누구도 27세와의 싸움에서 박진감 넘치는 주먹 대결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도 한계가 있다. 타이슨도 예외가 아니다. 그 시합은 최연소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으로 상징되던 시대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후, 폴은 “일부러 타이슨을 때려눕히지 않았다. 관중들에게 좋은 쇼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타이슨을 봐 주기 위해 강하게 때리지 않으려 최대한 경기 흐름을 조절했다고 시인했다. 일종의 ‘쇼’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
그래도 관중들은 실오라기 희망과 기대는 있었을 터이다. 타이슨에 대한 강한 향수 때문. 하지만 실망은 컸다.
“단순히 쇼였다. ‘경기’가 아니었다.”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조차도 가짜인 세상에서 더 뭘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연예오락의 세계다.” “싸움이 아니라 안무가 짠 춤이었다. 또다시 프로권투는 가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 모두는 프로권투의 음습한 세계에 놀아났다.”
프로권투 팬들 가운데 타이슨이 돈이 아쉬워 나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수억 달러를 벌고도 다 날린 끝에 “밥을 먹을 수도, 집세를 낼 수도 없는 신세”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너그러운 사람들도 있었다. 실망했다는 사람들에게 “둘 다 권투 시합하러 온 것이 아니다. 오로지 돈을 위해 쇼하러 나왔다. 웬 불평이 많으냐”고 나무랐다. “누구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싸움이 아닌 돈벌이 행사였을 뿐이다. 추억 여행이었다”고도 했다.
‘스포츠의 술집 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연예오락 쇼를 보면서 온 힘을 다해 경쟁하는 스포츠의 의미나 미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 두 사람은 돈을 벌고 관중들을 웃고 즐겨 좋다. 그러면 되지 않았느냐 투다. 이들은 이미 권투를 포함해 많은 프로 스포츠가 진지한 경기가 아님을 알고 있다. 스포츠가 영혼을 팔아 엄청난 돈이나 챙기는 세상이 되었음을 안다.
세계 미들급 왕좌를 5번 차지했던 슈가 레이 로빈슨이 1965년 44세 때 복귀했다. 기자는 그 상황을 “스포츠의 술집 거리”라고 무자비한 표현을 했다. 돈 벌기 위해 다시 밤거리에 등장한 모습이라는 것. 세계 5체급 챔피언을 석권했던 슈가 레이 레너드도 1997년 마흔 넘어 돌아왔다. 이번 타이슨과 폴의 ‘쇼’를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냉정한 권투평론가도 있다. 이미 프로권투는 서산에 지는 해와 마찬가지. 뭣을 하던 돈만 벌면 된다는 프로권투를 새삼스럽게 진지한 스포츠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더는 없다는 뜻이다.
이번 ‘행사’가 오히려 프로권투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연예오락의 쇼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 디즈니 출신으로 유튜브 스타가 된 폴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소셜미디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프로권투는 ‘피가 있는 오락’이자 ‘쇼 사업’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향수는 감성 넘치는 예술인들에게는 좋은 소재. 하지만 스포츠가 그것에 의존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가 ‘연예오락 쇼’로 변질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60여 년 전에 등장했던 “스포츠의 술집 거리”가 프로권투 외에 다른 스포츠에도 등장할까? 한국에서도 현역 스포츠 선수들조차 연예오락 프로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걱정이다.
손태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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