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일반
열오른 HBM 주도권 경쟁…내년 HBM4 양산 목표로 개발 박차
엔비디아, 삼성 HBM 공급 검토…반도체 시장 변화 예고
"고객 원하면 외부 파운드리로"…삼성전자, HBM에 사활
SK하이닉스, '1등 자신감' 엔비디아 납품으로 입증
테슬라 'HBM4' 공급 선점 경쟁…패권 가를 승부처
반상(盤上)의 흑돌과 백돌이 벌이는 변화무쌍한 혈투는 굴곡진 인생사와 닮아 있다. 절대적인 답도 없는 만큼 승기를 잡을 때도 있지만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한다. 대한민국 경제를 짊어진 굴지의 기업들도 상황은 같다.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경쟁에서 때로는 흑이 되고, 때로는 백이 된다.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은 마이데일리가 국내 산업계에서 바둑의 흑과 백과 같은 '팽팽한 승부처'에 주목했다.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AI산업을 주도할 HBM 반도체 시장을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경쟁이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HBM을 처음 시장에 선보인 SK하이닉스가 현재까지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역시 주도권 확보를 위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AI 반도체를 사이에 두고 엔비디아, 인텔, AMD 등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은 필수불가결한 목표로 자리 잡았다.
28일 반도체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HBM 경쟁은 현재 6세대 단계에 접어 들었다. HBM은 여러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가치·고성능 제품이다.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됐다.
국내 업계 쌍두마차인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내년 하반기 상용화 예정인 차세대 HBM으로 꼽히는 HBM4(6세대)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HBM4의 경우 아직 개발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물론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까지 해당 제품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BM4는 전작 'HBM3E'에 비해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 등 방대한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6세대부터는 기존 제품들과 다른 공정 방식이 적용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개발 및 공급을 선점할 경우 HBM 시장을 장악한 SK하이닉스와 함께 '2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D램 글로벌 빅3 업체들은 HBM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해외 비즈니스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HBM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HBM 공급에서 선두주자 자리를 지킨 곳은 SK하이닉스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 50%로 삼성전자를 누르고 독보적인 1위를 지켰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래 꾸준한 투자를 통해 기술력 우위를 지켜왔다. D램을 여러 층 쌓아 올려 연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HBM은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가속기에 필수적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하고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세계 최초로 5세대 HBM3E 12단 양산에 돌입한 것은 물론 2027년까지 엔비디아에 HBM 주문 계약이 완료된 상태다.
HBM 공급량 증가는 실적의 수직 상승으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7조300억원으로 3조8600억원에 그친 삼성전자를 가뿐히 제쳤다. 올 1~3분기 누적으로도 SK하이닉스(15조3845억원)는 삼성전자(12조2200억원)를 3조원 이상 앞질렀다.
SK하이닉스는 개발 속도 면에서도 삼성전자를 한 발 앞서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HBM3E' 개발 성공을 알리며 성능 검증 절차 진행을 위해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개월 뒤인 10월에서야 HBM3E D램인 '샤인볼트(Shinebolt)'를 공개했다.
HBM 5세대(HBM3E) 개발에 성공한 유일한 곳도 SK하이닉스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3E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 "역전의 기회" vs "굳히기"…테슬라 HBM4 선점으로 반전 승부수?
반전에 대한 전망도 얼마든지 있다. HBM을 무기로 SK하이닉스가 실적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HBM4 양산 여부에 따라 상황이 급반전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HBM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HBM4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2025년 하반기까지 개발을 마치고 양산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HBM4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HBM4를 위한 전용라인 'D1c'까지 구축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벌이는 테슬라 HBM4 공급 경쟁도 주목 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테슬라로부터 6세대 HBM인 HBM4 공급 요청을 받고 이를 위한 시제품을 개발 중이다.
테슬라는 공급 받은 HBM4를 자체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인 '도조'에 활용할 계획이다. 다만 테슬라가 두 업체 중 한 곳만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더 쏠린다. 삼성이 테슬라에 HBM4 독점 공급에 성공할 경우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현격히 좁힐 수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HBM 엔비디아 납품 임박 소식도 들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HBM3E 공급을 구체화 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3E 샘플을 엔비디아에 보내 납품을 위한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나 아직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3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예상보다 지연됐지만 주요 고객사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고,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혀 기대감을 높였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언급한 '주요 고객사'가 엔비디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일각에선 젠슨 황의 발언이 삼성전자의 HBM3E 품질 승인 사실을 확정한게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젠슨 황이 납품 승인을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언제' 승인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명확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랠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HBM의 엔비디아 납품은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게 되면 SK하이닉스와의 정면승부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은 HBM3E로 본격화돼, 6세대인 HBM4까지 이를 것으로도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HBM4 공급을 내년 상반기로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기흥캠퍼스에 차세대 R&D 단지 운영을 위한 설비 반입에 나서는 등 HBM 패권 싸움을 위한 본격적인 채비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신설된 HBM 개발팀을 필두로 HBM4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제조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와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점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그간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모두 갖춘 종합반도체기업(IDM)이란 장점을 살려 HBM을 한 번에 생산·공급하는 '턴키' 솔루션을 경쟁력으로 유지했으나 이번 고객 맞춤형 'HBM4'의 경우 TSMC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아예 전면 수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선점을 비롯해 테슬라, 인텔 등 글로벌 HBM 공급 경쟁은 현재와 같이 앞으로도 기업의 명운을 건 최대 승부처로 지속될 수 밖에 없다"며 "SK하이닉스 천하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1등의 DNA'를 언제 다시 깨우느냐가 향후 두 기업의 성패를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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