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혼자 아이 신발을 사러 가게에 갔다. 아이를 데려가도 어차피 신겨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직도 속에 털이 들어간 겨울 신발을 신고 다닌다. 계절에 맞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참 많이 울었지. 이젠 발이 땀으로 젖어도 그것만 신겠다고 한다.
처음 들어간 신발매장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직원만 있었다. 직원은 내게서 조금 떨어진 채, 그러나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기 쉬운 거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조언을 얻기 어렵겠다는 편견에 차 있었다. 좋아 보이는 신발을 만지작대다 그냥 나와 버렸다.
다음에 들어간 매장에는 중년 여성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나를 보자마자 대번 아이 개월 수부터 물어본 뒤 어떤 사이즈가 적당한지 알려 줬다. 내가 아이 발 모양 특징을 얘기하자 한 제품을 자신 있게 권했다. 그러나 아이가 지금 신고 다니는 신발과 너무 다른 디자인이라 한참 망설였다.
“직접 신겨보고 사면 좋은데, 아이가 새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아서 참 어렵네요.” 그러자 중년 직원은 “대부분 아이가 새 신발 신는 걸 싫어해요”라고 답했다. 그 말에 조금 위로를 얻었다.
“애들이 자기 신발에 얼마나 애착이 큰대요. 그런데 갑자기 새 신발을 신으라고 하면 신겠어요?” 그러더니 유능한 선임이 신입을 가르치듯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아이 눈에 익숙해지도록 며칠 동안 신발을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두기만 하라고 했다. “아이한테 신어보자는 말은 절대로 먼저 하면 안 돼요.”
다음에는 신발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아보라고 했다. “신발 자동차가 간다! 부웅!” 내 앞에서 열성적으로 엄마 연기를 한창 펼쳐 보였다. “이렇게 하면 다 신어요.”
신발, 모자, 찰흙, 눈, 미역, 국수…. 그간 아이가 낯설어하고 싫어하던 모든 것, 내가 기울인 모든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이렇게 해 보셨어요?”라며 그는 대답을 독촉하듯이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렇게 재미있게 놀아주지는 못한 것 같네요”라고 대꾸했다.
직원은 재미있게 놀아주는 모습을 한 번 더 시범 보인 뒤 “이렇게 하면 다 신어요”라고 또 말했다. 그리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해보세요!” 하며 내 등을 툭 토닥였다. 육아 대선배가 초보 엄마를 응원하듯이.
기운 없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하면 다 된다”는 만병통치약 같은 호언장담을 믿지 않을 뿐이었다. 당신이 뭘 알까? 내 아이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아이에게 처음 신발을 신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내가 그저 서툴고 마음 약한 엄마인 줄로만 알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계산하고 돌아서자 곧바로 내 비뚤어진 마음이 미웠다. 내가 뭘 안다고. 저 사람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집으로 돌아와 그 직원 말대로, 또한 늘 그랬듯이 신발을 마치 장난감처럼 거실에 두었다. 며칠 동안 아이가 슬쩍 눈길을 주는 모습을 확인하고, 어느 날 검지 손끝으로 살짝 만지는 걸 보았다. 그러나 놀아주려 들면 잽싸게 외면했다. 이러다간 다음 계절이 오고야 말지.
예전 신발은 숨기고 새 신발만 현관에 두었다. 아이가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신발장 문을 열어 곳곳을 확인했다. “이거 신고 킥보드 타러 가자.” 아이는 이내 펑펑 울면서 새 신발을 신었다. 아이가 새 신발에 저항하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이는 걷다가 종종 신을 벗으려 했다. 다음 날 저녁에 보니 아이 발 양쪽 같은 곳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신발이 잘 안 맞구나.
다음 날 일전에 다른 매장에서 만지작대던 신발을 홧김에 샀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가격은 계산서에서 확인했다.
아이가 눈에 익힐 시간 따위도 두지 않았다. 전에 신던 겨울 신발과 새로 사 온 신발을 나란히 두고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지지(더러운 것) 많이 묻었잖아. 그러니까 새 거, 깨끗한 거 신자.” 아이가 뭔가 생각하듯 몇 초간 가만히 있는다. 그러고는 새 신발에 발을 넣고 곧장 현관 밖으로 신나게 뛰어나갔다.
아이가 울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내 코끝이 시큰했다.
이제 신발에 대해 더 할 이야기가 없겠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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