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의 감각 | 저자:조수용 | 출판사:REFERENCE BY B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디자이너 강은영] “맞는 디자인이란 누구에게나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지향점과 맞는 디자인이다. ”(p.86)
조수용의 <일의 감각>에서 읽은 한 문장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동네를 산책하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골목에 새로 문 연 가게를 발견했다. 유리창 너머 메뉴판을 살펴보니 흔치 않은 조합이 눈에 띄었다.
잔 위스키, 위스키에 어울릴 법한 간단한 안주, 자동식 기계가 아닌 수동식 사이폰 커피. 얼마 후, 지인과 약속 덕분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술은 역시 낮술이 제맛이지만, 운전이슈로 사이폰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와 함께 할 디저트로는 과일을 얹은 작은 쌀가루 쉬폰 케이크 한 조각을 택했다.
그러나 주문 과정이 조금 어색하게 흘러갔다. 사이폰 커피는 개별 가격이지만 원두는 통일해서 주문해야했다. 두 잔을 각각 다른 원두로 안 되는 이유를 묻자 직원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결국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와 케이크가 나왔다. 커피잔은 사이폰 커피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케이크를 올린 접시는 투박하다 못해 이것이 맞는것인가 의문이 생기는 플라스틱이었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으면 매일 같이 따라 붙는 단어가 있다. ‘감각’
툴을 다루는 기술 그 이상을 요구받는다. 기술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읽고,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 디자이너는 그런 역할을 한다.
<일의 감각>은 감각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실패, 반복 속에서 점차 정제된다고 말한다. 사소한 디테일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태도에서 감각은 생긴다. 날마다 쌓이는 선택이 결국 감각의 밀도를 만든다.
저자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기획자로 일을 단순히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일의 결과 맥락을 읽어내는 태도야말로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마치 자로 잰 듯한 디자인보다, 손으로 정성스레 만든 엽서 한 장이 더 울림 있는 것처럼.
감각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일상의 장면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순간들을 감각의 재료로 만든다.
<일의 감각>은 디자이너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직장인, 자영업자, 무언가를 만드는 모두에게 감각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감각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 하는 일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면 이 책이 새로운 감각을 불러내겠다.
‘왜 일하는가’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이에게 질문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감각의 핵심입니다. ”(p.154)
|강은영. 책을 최고로 많이 읽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않은 북디자이너. '표1'보다 '표4'를 좋아한다.
디자이너 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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