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스포츠가 정치 이념에 지배당하고 현실 정치에 오염된 지는 오래되었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선수·감독들이 나서 특정 정치인·정치 세력을 비난하는 발언을 일삼는다. 경기장에서 국기에 경례를 거부하거나 무릎을 꿇는 등 자신의 정치 신념을 밝히는 행위를 벌인다.
그런 정치 발언과 행위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인종 문제.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갈등은 정치 이념과 맞물리면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폭력 사태 등 심각한 물리 충돌도 일어나기 일쑤.
최근 미국 프로여자농구(WNBA)에서는 선수들 간 흑백 갈등이 경기장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관중들이 그 싸움에 끼어들면서 상황은 인종 대결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러한 소용돌이는 해마다 적자에 허덕이는 WNBA의 인기를 높이는 흥행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불구경과 함께 가장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는 속설을 입증하듯. 그러나 진정한 실력대결보다는 지나친 몸싸움·거친 반칙에다 인종차별 발언이 마구 일어나면서 여자농구는 물론 프로 스포츠에 대한 혐오감은 갈수록 커진다.
■ “미국 프로 스포츠가 점점 ‘반 백인화’ 되는 것 같다”…다음은 미식축구?
백인인 케이틀린 클라크는 24년 신인 선발 1순위. 인디애나 피버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 첫해 평균 19득점, 도움 9개를 기록하면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인디애나 모든 안방 경기는 1만8,000 관중이 꽉 들어찼다. 전례 없던 일. WNBA 전체 관중 동원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클라크는 1년 내내 흑인 선수들의 “인종차별에 따른 반칙과 언어폭력의 표적이 되었다.” 몸싸움이 격렬한 센터나 파워포워드가 아닌데도 경기 당 평균 4개의 반칙을 얻었다. 심한 압박에 대항하느라 그녀도 6개의 테크니컬 반칙을 했다.
그러한 공세에 앞장선 선수가 시카고 스카이의 흑인 엔젤 리스. 지난해 7위로 뽑힌 그녀는 클라크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흑백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최근 리스는 클라크를 “시비 걸려도 도망치는 백인 여자”라고 조롱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경기에서 클라크가 자신의 동료를 밀친 리스에게 ‘플래그런트 반칙’을 한 뒤 일어났던 장면.
관중들도 서로 인종 증오가 담긴 고함을 치는 등 볼썽사나운 흑백 싸움을 벌인다. WNBA도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증오를 강력히 규탄한다. 용납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조사에 나설 정도로 상황은 심상찮다.
그러나 전 ESPN 해설자는 클라크가 겪는 끊임없는 신체 밀침은 “단순한 경쟁”이라고 주장했다. 클라크가 백인 선수라 반칙·언어폭력·편파 판정에 당한다는 비난은 과잉 반응이라는 것. 여자농구의 “경쟁이 심해졌을 따름”이라고 말헸다.
이유가 어떻든 흑백 갈등은 스포츠 애호가들을 실망케 한다. “스포츠가 아니라 정치 투쟁처럼 보인다.” “‘인종차별 증오’는 WNBA 시청률 확대라는 중요한 순간을 망칠 것이다. 많은 미국인은 짜증 나는 인종차별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흑백 논란을 더 불붙인 것은 경기장에서의 흑인 추모 행사. 미네소타 링크스는 코네티컷 선과의 경기 전, 미니애폴리스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정치단체가 주최한 행사의 하나.
20년 흑인 플로이드는 마약을 구하러 거리에 나섰다가 경찰 검문 과정에서 숨졌다. 그의 죽음은 미국 전역에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인종 갈등을 빚은 정치 사건으로 번졌다. 검문 경찰관은 실형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사인은 과잉진압이 아니라 마약 중독이라며 지금도 논쟁 중이다. 매우 예민한 정치 갈등이 왜 농구 경기장 식전 행사로 등장해야 하는 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이를 보며 백인들은 “프로 스포츠가 점점 더 ‘반 백인화’되는 것 같다...다음 차례는 미식축구가 될 것 같다”고 말한다.
■ 미국 사회, ‘DEI’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지만…NBA·WNBA에 아시아계 단 한 명도 없다
현재 미국 흑인 인구는 전체의 14%. 그러나 WNBA·NBA 전체 선수의 70%가량을 차지한다. 백인 인구는 60%가량. 선수는 18%밖에 되지 않는다. 흑인들은 특유의 탄력성 등으로 남녀 농구를 완전 장악하고 있다. 그야말로 실력으로 백인이나 다른 인종들을 압도한다. 누구도 “흑인 선수가 너무 많다”고 토 달지 않는다.
아시아계 인구는 6~7%. 그러나 WNBA·NBA에 단 한 명도 없다. 역사를 통틀어 몇 명 되지 않는다. 올해 대만계 선수가 WNBA 신인 선발 거의 끝 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뽑혔다. 하지만 마지막 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다. 중국계 인구가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본거지라 관중 동원을 위해 남겨 둘 것이란 기대도 있었으나 구단은 냉정했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이란 정치 이념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하지만 실력·신체 조건 등의 현실 때문에 누구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들이대며 “왜 아시아 선수들은 뽑지 않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흑인 선수들은 끊임없이 인종차별 등 정치 발언을 한다. NBA·WNBA 모두 “다양성·포용성”을 중요 가치로 앞세운다. 과연 6%를 아시아 선수로 채울 것인가? 그들에게 실력만 요구할 뿐 어떤 배려도 없으면서 그러는 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마크 큐반은 23년간 남자농구 댈러스 매브릭스의 구단주. 워낙 입이 거칠어 NBA에 낸 벌금만도 400만 달러(55억 원가량). 정치 발언 등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는 지난해 소셜미디어 등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념을 강하게 옹호했다. 그는 모든 채용에서 인종·나이·성별에 따라 적절하게 나눠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바로 받았다. 큐반에게 “언제 키 작은 백인 여성이나 아시아 여성을 매버릭스에 넣을 거냐”고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질문. 그러나 통렬한 조롱. 실력만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인종이나 성별을 우대하는 구단 운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자신이 잘 알면서도 정치 발언을 일삼는 큐반의 위선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었다.
큐반은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에게 DEI 채용으로 매버릭스에 넣어달라고 요청한 중국 여성을 차단했다.
“오 안 돼. 이건 가장 슬픈 일이야. 내 고용주 큐반이 날 막았어. 가장 부당한 일이야! 내 꿈은 이제 매버릭스에서 DEI 선수 1호가 되는 게 아니야. 모든 산업에서 DEI를 위해 싸울 거야. 나는 중국인이야. 정의를 위해 싸울 거야!!!”
스포츠가 정치에 지배당하면서 일어난 한 편의 기괴한 희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스포츠는 인종 문제 등 정치 이념에 추악하게 멍들어가고 있다. 한국 스포츠도 DEI 등 정치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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