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시] 태백과 소백, 양백지간에서 홀로 솟다. 태백산 부석사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닌 해동 화엄종찰의 무량수전 아래로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물결치듯 다가온다.

이 땅의 가장 뛰어난 사찰 건축으로 꼽히는 부석사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그 앞의 석등(국보 제17호)이 있어 단연 빛난다. 구품 만다라를 상징하는 석축들의 마지막, 어둑한 안양루 밑 계단을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 선 순간 시야가 탁 트이고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산봉우리들이 물결치듯 발 아래로 다가온다. 해발 259미터 자그마한 봉황산이 품은 부석사 무량수전은 태백산 줄기를 타고 내달리는 산 중턱에 화엄종찰의 위엄과 품격을 간직한 채 정좌하고 있다.

부석사 건축의 이러저러한 면을 복잡하게 논하기보다 사람들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로맨스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절 이름 자체도 선묘낭자가 신통력을 발휘한 '뜬 돌[浮石]'인데다, 경내 무량수전 왼쪽에는 실제로 '부석'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으니, 선묘낭자 전설은 극적이기조차 하다. 게다가 선묘낭자의 영정까지 걸어둔 '선묘각'의 존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1400여 년 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어쨌든 의상이 평생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출가하여 멀고 먼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떠난 것은 661년(문무왕 4년), 그의 나이 36세 때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멸망한 뒤 화엄의 대가로서 신라에 되돌아온 의상은 676년(문무왕 16년) 부석사를 세우고 해동 화엄종의 창시자이자 부석존자로 불렸으며, 3000여 명의 제자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부석사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을 모두 볼 수 있다.

최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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