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여자농구 악몽, 야구의 신세계를 기대한다[김진성의 야농벗기기]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9년 전 여자농구의 악몽은 반복되면 안 된다.

신세계그룹이 1352억8000만원에 SK 와이번스를 인수한다. SK텔레콤의 매각 의지보다 정용진 부회장의 KBO리그 입성 의지가 강력했다. 양사는 인수 및 매각 TF팀을 구성했고,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갔다.

신세계는 유통업이 간판사업이다. 내수시장이 중요하다. 최근 다각도로 신사업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다. 정 부회장은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과감하게 야구를 택했다. 비즈니스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재계 및 야구계의 시선이다.

그런데 한국 프로스포츠의 산업화는 여전히 걸음마단계다. 삼성, SK, LG 등 재계 탑5도 한국 프로스포츠에 진정한 자생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 때문에 정 부회장은 KBO리그 회원가입과 함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특명을 받는다. 인천 청라에 건설 중인 스타필드에 돔구장을 지을 것이라는 전망, 기존 SK행복드림구장을 또 하나의 스타필드급 복합시설로 탈바꿈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현실의 벽을 얼마나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국내 야구장은 지방자치단체 소유다. 신세계그룹이 인천시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용도변경을 할 수 없다. 일단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의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 프로스포츠의 충성도 높은 소비자는 다른 영역의 소비자들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국내 프로스포츠 팬들은 여전히 모기업보다 선수, 감독 등 인물 자체에 집중한다. 성적에 민감하다.

충성도 높은 인천 야구 팬들은 SK가 인천을 갑자기 떠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신세계는 이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와이번스 TF팀은 이미 신세계 TF팀에 인천 팬들의 정서를 헤아려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각 계열사를 향한 소통 행보를 강화한 정 부회장이 이 부분을 간과하면 결코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와이번스 팬들은 최근 정 부회장의 SNS에 구단명 와이번스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신세계는 와이번스를 쓰지 않을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인천 팬들을 달랠 수 있어야 한다.

신세계그룹의 프로스포츠 진출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여자프로농구 신세계 쿨켓을 운영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발을 뺐다. 보도자료를 2012년 4월 13일 오후에 냈는데, WKBL에 고작 보도자료 발표 1시간 전에 통보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WKBL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 농구 팬들의 정서를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프로스포츠 구단의 해체는 구단 수뇌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 부회장은 당시에도 그룹 부회장이었다. 단, 농구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 부회장이 여자농구단 해체에 직접 관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신세계는 WKBL 회원사 시절에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타 구단 및 WKBL과 크고 작은 대립각도 많이 세웠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보이콧 사건, 2011년 FA 김계령의 보상선수 지명을 놓고 잠수를 탄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농구 팬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행태로 큰 비난을 받았다.

세월이 흘렀다. 신세계는 지난 9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KBO리그에선 성숙한 회원사로 거듭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프로스포츠의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은 일반 소비자들과 결이 다르다. 9년 전 농구 팬들에게 줬던 아픔을 야구 팬들에게 똑같이 안기면 안 된다.

와이번스 팬들은 SK가 인천을 떠나면서 큰 상처를 받았다. 신세계가 와이번스를 인수하는 건 와이번스 팬들을 보듬겠다는 정서가 포함됐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KBO리그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9년 전 농구계에 안겼던 상처, 그리고 인천 팬들의 진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안 된다. 야구의 신세계를 기대한다.

[SK행복드림구장.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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