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까칠한 축구]역대 최악 정권의 '쇼'는 끝이 없다, 부끄럽지 않은가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이사진 전원 사퇴. 대한축구협회는 협회 부회장단과 이사진 전원이 오늘(4일) 오후 일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들이 조만간 정식 사퇴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협회 정관에 따라 선임된 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면 수용 여부에 상관없이 사임한 것으로 간주된다.

지난 4월 4일.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이다. 토시 하나 바꾸지 않은, 축구협회가 쓴 그대로다.

정확히 29일 후인 5월 3일.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 드러났다. 축구팬들과 국민은 '악어의 눈물'에 속았다. 그들은 29일 동안 '쇼'를 한 것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보인가. 승부 조작범을 포함해 100명의 긴급 사면을 결정하자 엄청난 역풍을 맞았고, 축구협회는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최전방에 내세운 것이 부회장 및 이사진 '총사퇴'였다.

그런데 29일 만에 말을 바꾸었다. 반성의 마음도, 개혁의 의지도 바뀐 것일까. 축구협회는 7명의 이사진에 당당히 면죄부를 줬다.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조연상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논외로 한다고 해도, 최영일 부회장·이석재 부회장·정해성 대회위원장·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서동원 의무위원장은 왜 유임이 됐는가.

정몽규 회장의 설명은 이렇다.

입장 발표문을 통해 정 회장은 "일부 분과위원장의 경우,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사퇴를 하게 돼서, 본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또 몇몇 부회장은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유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이에 대한 질문을 하자 정 회장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25명 중에 7명만 남았다면, 4명 중 3명이 바뀐 것이다. 25명을 다 바꿔야 변화가 있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 그분들이 사면에 직접 관여했거나 건의한 분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 회장의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 꼴이 됐다. 불신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역할도 해냈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그분들이 사면에 직접 관여했거나 건의한 분도 아니다."

이번에 유임된 이들은 사면에 직접 관여하지도 건의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물러난 나머지 집행부는 모두 직접 관여하고, 건의를 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퇴한 집행부 중에는 이사회에 들어가 처음 사면 의결 소식을 들은 이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왜 사퇴하게 내버려 뒀는가? 무슨 기준으로 사면 관여도에 대한 점수를 내렸고, 사퇴와 유임의 판단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을 점하기 위한 전형적인 '편 가르기' 발언이다. 다른 쪽을 악으로 만들고 자신들을 선으로 둔갑시키는 고리타분한 전략. 즉 한쪽은 사면에 가담한 죄인, 다른 한쪽은 사면과 관련이 없는 깨끗한 우리편으로 가른 것이다. 이게 아니라면 누가 직접적으로 관여했고, 누가 관여하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밝혀라.

"25명 중에 7명만 남았다면, 4명 중 3명이 바뀐 것이다. 25명을 다 바꿔야 변화가 있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

숫자 놀이를 하자는 게 아니다. 축구협회가 직접 내건 '약속'을 지키라는 거다. 집행부 총사퇴를 누가 시켰나? 강제로 했나? 그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축구팬들은 그걸 믿고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4명 중 3명이 바꿨으니 이해해달라고? 25명을 다 바꾸는 건 지나치다고?

지나치지 않다. 오히려 모자라다. 이런 어설픈 총사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지도부 총사퇴의 결정은 전체가 함께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져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잘못을 했건, 누가 잘못을 하지 않았건, 전체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물론 이사진 중 개인적으로 잘못이 없는 이도, 억울한 이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면을 의결시킨 그 이사회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죄다.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어도 사면을 강행한 이사진에 포함된 것 자체도 죄다. 이를 막지 못한 모두가 함께 죄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

"일부 분과위원장의 경우,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사퇴를 하게 돼서 본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다. 지난 1월 정해성 위원장, 이임생 위원장, 뮐러 위원장이 선임됐다. 이제 겨우 5월 초, 짧은 기간인 것은 맞다. 그런데 기간이 왜 중요한가. 죄의 무게는 임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함께 죄를 지었으면 1일을 근무했더라도 함께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같은 날 선임된 이동국 부회장과 조원희 사회공헌위원장은? 이들은 약 2달 동안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고 떠났나. 도대체 무슨 기준인가.

"몇몇 부회장은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유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업무의 연속성, 한 조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집행부 총사퇴로 행정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총사퇴를 선언할 때는 행정 공백이 생길지 몰랐나? 다 알면서도 총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말은 해놨는데 직접 겪으니 너무 힘들었나.

지도부 총사퇴라는 결정은 앞뒤 사정 다 봐주면서 하는 게 아니다.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반성의 마음과 참회의 의지로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 고통의 길 속에서 축구팬들과 국민은 그들의 진심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해보지도 않고 백기를 들었다.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총사퇴가 아닌 일부 사퇴를 선언했어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누가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겠는가.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당시 여론이 워낙 폭발적이라서 일부 사퇴라는 말을 꺼내는 건 두려웠나?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해 총사퇴라는 미끼를 던진 것에 불과하다.

그 부름에 응한 이들도 이해할 수 없다. 총사퇴 때 동참은 왜 했나? 축구협회의 삼고초려 등의 변명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 문제다. 책임 통감의 차이다. 의지만 있다면 다른 많은 이들이 한 것처럼 사퇴에 동참하면 된다.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자들의 탐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탐욕을 축구협회는 기꺼이 받아줬다. 그들만의 윈-윈 전략.

결론적으로 축구협회의 '쇼'에 불과했다.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여론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이때를 틈타 총사퇴를 번복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스스로 약속을 깼으면서도 우리에게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익숙하다. 어디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었나. 도돌이표.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 때도 그랬고, 거스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에도 그랬고, 임직원 법인카드 사태 때도 그랬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론이 들끓을 때 반성하는 척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렸고, 시간이 지나면 원상 복귀하는 그들만의 공식. 몸통은 언제나 그대로, 꼬리만 숱하게 잘라낸 그들만의 방식. 진정 '역대 최악'의 정권이다.

알면서도 이번에 또 당했다. 이런 정권 아래 놓여 있는 한국 축구가 불쌍하다.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최악의 정권의 무엇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어떤 발전과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 정 회장과 돌아온 집행부는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정 회장의 발언을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가장 책임이 큰 나 역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임기가 1년 8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협회를 안정시키고,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회장으로서 진정으로 한국 축구를 위하는 길이라고 판단을 했다."

[이사진 전원 사태를 알리는 대한축구협회 보도자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 = 대한축구협회]

최용재 기자 dragonj@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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