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인권위 릴레이 1인시위 ④] 국가인권위원회 직원 김민아
비정규직 차별을 조사하는 인권위가 최근 계약직 직원을 해고했다. 요즘 인권위 직원들은 슬프다. 인권위 스스로 지난 10년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인권위 본연의 임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인권위 직원들이 인권위를 인권위에 진정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위원회 지도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권위는 현재 계약직 직원에게는 계약연장 거부라는 무기를, 일반직 직원에게는 승진·평가라는 무기를, 현 지도부에 비판적인 자에게는 감사나 본인의 의사에 반한 교육훈련을 무기로 들이밀고 있다. 또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간접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직원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인권위가 하루빨리 이번 결정을 철회하고 인권 본연의 가치를 회복해줄 것을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말을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 기자주
먼저, 현빈님께 미안합니다. 님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님이 하신 명대사를 마구 끌어다 쓰는 볼품없는 이 패러디를 그러나 부디 용서하소서.
나무처럼 한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다가 "어 뭐야~ 깜짝이야" 하는 오빠들이 있었고, 까르르 웃는 언니들도 있었습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점심을 사준 것인지 "선배님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권위 동료들도 오가며 걱정과 사랑의 눈짓을 보냅니다. 날은 추워도 일상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인권위는 <시크릿 가든>입니다. 인권위 높으신 분들이 그들만의 가든에서 모든 인사, 감사, 해고의 시크릿을 만들고 있네요. 어찌된 영문인지 듣고 싶어 대화를 청하면 "나가세요"라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십니다.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왜 자꾸 이러느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요, 꼭 함께 일해 온 계약직 동료가 해고되어서 이러는 것만은 아닙니다.
"보편적 인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요?"
엘리노어 루즈벨트 여사는 1958년 세계인권선언 1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답했죠.
"우리의 가정 가까이에 있는 작은 장소, 너무나 가깝고 작아서 세계 어느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러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비록 그곳이 개개인의 세계일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자신이 다니는 학교, 자신이 일하는 농장이나 사무실도 모두 개인의 세계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보편적 인권이 의미가 없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의미가 없습니다"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깨닫고 나면 사실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알게 되면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지금 인권위 동료들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인권위가 되레 반인권적인 일들을 벌이고 있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습니다. 진리란 인식과 대상의 합치라지요. 입으로 말한 것을 행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던 동료들이 자의든 타의든 이미 인권위를 떠났습니다. 저는 30대를 온전히 인권위에서 보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동료들을 시간 속으로 흘려보내야 할까요?
"나대지 마라" 찍히면 죽는 세상... 인권 잃어버린 한국의 '인권위'
개그콘서트에서 100원만 달라고 조르는 바보 양상국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나대지 마라"고 합니다. 어느 순간 그 말이 개그로 들리지 않아 화면을 뚫어져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대면 찍히고, 찍히면 죽는 세상에서 배운 대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힘 있는 자가 한 놈만 잡아 패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울분과 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지잖아요. 자신도 찍히면 저렇게 당할 수 있다는 공포.
지금 인권위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그 공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공포와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불합리, 불평등, 인권침해, 차별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 인권위는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편을 들어야' 하는 기관입니다. 그 본분과 가치가 지도부의 정치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난해 5월 한국을 다녀간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최근 '모든 인권과 발전권을 포함한 시민 정치 경제 문화적 권리의 증진과 보호 : 한국실태조사' 보고서 초안을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라뤼 보고관은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주된 이유는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견해를 표현하는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와 박해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데 있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개인에 대한 박해. 더하고 뺄 것도 없이 현재 인권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축소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국제사회가 후퇴하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우려하고 있지만 사실 이 우려는 대한민국 인권위가 1차적으로 표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후퇴하는 인권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놓음과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인권위 본연의 업무입니다. 그러나 인권위 내부에서조차 인권이 위축되는 상황입니다.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인권위 지도부는 스스로 지난 10년의 인권 역사를 고스란히 까먹고 있지만, 인권위는 반드시 인권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인권위는 인권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인권위는 인권위 설립을 위해 혹한의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많은 시민사회단체, 인권위를 최후의 보루로 믿고 의지해온 소수자와 약자들 그리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와 권리를 구현해주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하루씩 돌아가며 맡는 시위일 뿐인데도 서글픈 마음을 가누기 어려운데 고공크레인 위의 노동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헤아리지도 못하겠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보다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가는 무관심이 더 힘들 그들. 크레인 위의 언니 오빠들! 그러나 잊지 마세요. 당신들을 늘 기억하고 있다는 걸. 한파가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봐야 겨울 안에서일 뿐입니다. 보세요. 반짝이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이미 봄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김민아 (news)
문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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