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잡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
<만추>는 <시크릿 가든>으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한 현빈이 출연한 작품이라 개봉 전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여기에다 <색, 계>로 유명한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죠. 이 작품은 대한민국 영화사를 이야기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만희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 했어요. 이미 명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는 것은 감독 개인으로서도 상당히 쉬운 일은 아니죠.
최소한 전작에 누를 끼치지 않고 현재에 맞게 영화를 각색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다만 김태용 감독이 오리지널 <만추>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이만희 감독의 <만추> 원본 필름이 소실되고 없기에 김태용 감독의 작가적인 의지가 리메이크 된 영화에 더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비단 <만추>뿐만 아니라 <하녀>조차도 외국에 수출한 필름을 다시 가져와서 자막을 다 지우는, 디지털 복원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DVD로 출시할 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과거 한국 명작이나 수작 영화들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죠.
2537번이란 수인번호를 달고 있는 애나(탕웨이). 그녀가 이렇게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게 된 것은 남편을 살해한 죄 때문이에요. 그녀는 교도소에서 7년을 수감하고 있는 중이죠.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단 3일 동안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죠. 이유는 애나의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주어진 3일 동안 이전 그녀의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죠. 그 일의 발단은 시애틀 버스를 타고 가는 훈(현빈)과 만나는 순간이에요.
그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감정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흐르죠. 하지만 훈이 하는 일은 교포 부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것이에요.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랑 없이 섹스만 하기에, 이 남자 결코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아요.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여자와 사랑 없이 섹스만으로 살아가는 남자와의 만남은 그 첫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범상치 않은 것이 사실이죠. 자신들의 삶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가지게 되는 두 사람이기에 더 그렇죠.
<만추>의 김태용 감독은 <여고괴담 2>(1999년)으로 한국 공포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을 연출했어요. 이후 큰 흥행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또 한편의 수작 <가족의 탄생>(2006년)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죠. 이번 작품 <만추> 역시 그가 얼마나 감독으로서 재능이 넘치는지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분명 재미로만 따지면 <만추>는 사실 관객들 모두 즐겁게 보기 쉽지 않아요.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나 내용이 관객들 마음에 어떤 떨림이나 울림을 주는지에 따라서 이 영화가 전해주는 묵직한 이야기들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죠. 감독의 고집이 들어가 있는 연출력과 탕웨이가 보여준 연기에 만족하는 관객들이라면 <만추>는 수작 대열에 충분히 합류할 수 있는 영화예요.
<만추>는 까도남 현빈이 아닌 탕웨이의 영화
사실 처음 <만추>가 언론에 공개되고 나서 <시크릿 가든>의 여파 때문에 모든 관심이 현빈에게 집중된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만추>는 탕웨이의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작품엔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혼재되어서 나와요. 애나와 훈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들 스스로 100%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언어로서 제대로 소통되지 못함에도, 서로의 감정과 마음을 알아가는 것은, 사랑이란 것에는 언어로만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파장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에게 급격하게 끌린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경험은 아니에요. 특히 <만추>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적 배경이 단 3일이란 것을 감안하면 과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품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나면 어떤 형태로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느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여지는 바로 탕웨이의 표정연기와 감정연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사실상 탕웨이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탕웨이는 영화의 애나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감정을 얼굴에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보여주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연기에서 마치 애나의 슬픔과 현재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이 느껴지죠. 사랑이란 것이 더 이상 자신에게 없다고 믿었던 한 여자가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얼굴 표정을 통해 그 모든 것을 담아낸 연기가 그만큼 탁월했단 것이에요.
<만추>에서 언어적 의사소통이 두 주인공 사이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에게 큰 감정적 울림을 준다면 그 공은 탕웨이에게 돌려도 될 것 같아요. 탕웨이의 뛰어난 연기를 완벽하게 잡아낸 김태용 감독은 최소한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았어요.
이만희 감독이 대한민국 작가주의 감독의 길을 열어놓고 명장 반열에 올라선 것을 감안하면, 김태용 감독의 <만추> 역시 올해를 빛낸 한국 작가주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꼭 거론해도 될 정도예요. 특히 이전에 그가 연출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독특한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만추>는 아주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죠.
문제는 분명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이지만 모든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란 것에 있어요. 특히 <시크릿 가든>의 차도남 현빈 이미지를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이 작품에서 얻어 갈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 작품은 그동안 그가 출연했던 작품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나는 행복합니다>정도는 아니지만, 현빈이란 배우가 단지 한 배역에 고정시킬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확실히 알려주는 작품인 것은 틀림없어요.
유진경 (moviejoy)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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