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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권리세 친북논란,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가 필요
모 언론에서 쓴 "위탄' 권리세, '조총련 소속' 김정일 축하공연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가 각 포탈사이트 탑 페이지에 게재되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오디션 방송 '위대한 탄생' 출신으로 현재 걸그룹 데뷔를 준비 중인 권리세가 조총련 계열 출신이며,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생일 축하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리세의 소속사가 "권리세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조총련 계열이었으나 이후 민단으로 전향했다", "방북 당시 권리세는 초등학교 때로, 어떤 성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선발돼 갔다"고 밝혔다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또한, "1990년 남북 화해 무드 이후 일본 조총련과 민단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만큼 과거 전력이 문제시되거나 비난받을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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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속사의 바람과는 달리 논란이 확산되고 있고, 일부 네티즌은 격한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권리세가 친북 성향이 짙은 조총련 계열이었다는 점과 북한을 방문해 고 김 위원장의 생일 축하 공연을 한 점을 문제시하고 있다.
이 기사 이후 온라인 상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조총련 출신에 친북행위를 한 자가 어떻게 연예계 활동을 하느냐"라는 시각과 "세상이 어느 때인데 친북타령이냐. 초등학교 때 한 일 가지고 트집이다"라는 시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
▶ 권리세가 지탄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 없다
과연, 권리세가 조총련 계열이었다가 민단으로 전향한 점을 문제시해야 할까?
친북성향으로 분류되는 조총련 계열 재일동포라도 실제로 다양한 부류가 존재한다.
당연히 절대적인 북한 신봉자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평생을 살던 사람들인 만큼, 북한에 대한 비판들을 직접 눈과 귀로 들어왔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식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삼대 세습에 대해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북한 정권을 거세게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필자가 직접 만난 조총련 출신 재일동포 할머니도 "그 양반들이 그러면 안된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했다.
조총련 계열의 모든 재일동포는, 어떠한 의미에서 '친북'이 맞다. 북한을 조국이자 고향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미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대부분의 조총련 계열 재일동포들은 한국에 적개심을 가지기 보다는 같은 민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보니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실제 조총련 계열이 많이 다니는 각 지역의 조선학교, 조선대학 학생 반 이상이 '한국' 국적이다. 몇달 전, 취재차 갔던 도쿄의 한 조선학교에서 검은 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국적을 묻자, 십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 가운데 반 이상이 한국 국적이라며 번쩍 손을 들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터뷰를 저지하려는 조선학교 선생님이었다. 한국 언론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지니고 있었다. '북한'과 연관됐다는 이유로 어떠한 발언을 하더라도 비꼬아서, 혹은 적대적인 기사만을 쓴다는 것이었다. 우리 매체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고, 그제야 웃으며 인터뷰를 하게 했다.
학습효과 때문인지, 한국언론에는 일단 경계심을 드러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 적의를 걷자, 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한류 스타 이야기를 했고, 명동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우리말과 우리글, 민족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조선학교를 보내는 재일동포도 상당수다. 일본 내 한국학교가 불과 서너개뿐인(더구나 학비도 비싼) 현실 속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가르칠 만한 곳이 없어 조선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념보다도 중요시됐던 것은 '민족'이었다. 재일동포 1세대 상당수가 전후에 고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남은 이들이라 남북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인지, 재일동포의 이념색이 한반도에서보다 옅은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정황 아래서, 우리 식 잣대를 사용해 조총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싸잡아서 비난할 수 있을까.
재일동포 경조사를 가보자. 조선적, 한국 국적, 일본 국적 할 것 없이 다양한 이들이 모여 경사스러운 일에는 축하를, 슬픈 일에는 위로를 나눈다. 여기에는 이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부부나 가족관계에서도 국적이나 소속이 다른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이들의 관계에서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재일동포 사회의 현실이다. 아무리 남북이 대치 중이라지만, 한국에서 이데올로기 문제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과장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권리세의 경우, 이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조총련 출신일 뿐만 아니라, 고 김 위원장 앞에서 생일 축하 공연을 했다는 '전력'도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
그녀는 조선학교에 다녔다. 본래 조선학교는 조총련계 학교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몇십년에 걸쳐 한푼도 지원해주지 않고 조선학교를 방관한 탓에, 조선학교는 '조총련학교'화됐다. 이제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있고, 북한 교육과정, 북한말을 배운다.
때로는 학생들을 북한 행사에 동원하기도 한다. 북한에 간 학생들도 개인 의사로 갔다기보다는 공연 가능한 이를 학교 측에서 선발했을 터이다. 권리세가 그랬다.
초등학생, 중학생에 불과했던 권리세가 여기서 그럼 거부라도 해야했을까. 더구나 그녀는 중학교 때 민단으로 전향했다. 전향한 자의 과거를, 더구나 초등, 중학교 때의 일을 이렇게 지탄해야 할까. 어린 시절 김정일 앞에서 공연한 점이 한국에 어떠한 해악을 가했을까. 어릴 때 한 행적 하나가 그녀의 사상을 결정지을 만한 일일까. 대한민국은 어떠한 혐의 하나로 죄를 단정짓는 국가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지금도 한국 정부와 민단은 조총련 계열 조선적 국적의 재일동포들에게 적극적으로 민단 전향, 국적 전환을 권유하고 있다. 그래놓고 이렇게 언론에서 들고 일어나 과거 전력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어쩌자는 것일까?
시민운동가로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다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 받는 박원순 현 서울 시장마저도 빨갱이 소리를 듣는 현 세태 속에서,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이제 한국에서 자리 잡고 활동을 하려는 재일'동포' 소녀에게, 이념의 잣대를 내세워 몰아세우고 있다. 이념이 뭐길래 아무 죄 없는 아이를 둘러싸고 이 같은 논란을 벌이는지, 많은 재일동포를 곁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담았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지호 기자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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