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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어른같으면서도 아이같다. 욕망에 불타는 눈빛을 보이다가도 겁먹은 아이의 눈빛으로 돌변한다. 욕망에 권력에, 또 탐욕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사랑앞에서 만큼은 이보다 순수할 수 없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적도의 남자' 속 이장일(이준혁)의 모습이다.
이준혁은 '적도의 남자'를 통해 한층 성장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력 논란없이 무난하게 잘 해왔지만, 이번 '적도의 남자'에서는 무난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준혁이라는 배우의 한계를 넘어 한층 성숙하고 연기의 폭을 넓히는데 성공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된 인물을 꼽으면 이준혁은 첫 번째로 거론되는 배우다.
▲ 장일이 사랑받은 이유는 시청자들이 솔직해진 덕
'적도의 남자' 속 장일은 분명 악인이다. 욕망에 눈이 멀어 학창시절 유일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준 선우를 배신한다. 그냥 배신이 아니라 뒤통수를 치고 그것도 모잘라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스스로에 대한 욕망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이토록 못된 장일을 시청자들은 애틋하게 바라봤다. 분명 결말은 파멸이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시청자들은 선우가 아닌 장일에게 연민을 느꼈다.
"장일을 위해 준비하거나 의도했던 것은 있었죠. 분명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장일이 사랑받은 이유는 시청자들이 솔직해진 덕이라고 생각해요. 장일은 욕망의 집약체같은 캐릭터잖아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불특정 다수고,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려야 하는건데 그만큼 우리 시청자들이 솔직해진 것이죠. 추악한 욕망은 배타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속에는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솔직해진 것 같아요."
이준혁은 장일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았다. 자신이 연기해야할 캐릭터였지만 장일은 분명 악한 캐릭터였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단 차갑게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장일을 그 누구보다 차갑가 바라봤어요. 제 스스로 장일을 이해하고 연민하기 보다는 장일이 저지른 죄에 대해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살인을 하는데 그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 될 수 없잖아요. 그런 시선에서 출발했어요. 그 후엔 죽기 직전의 도마 위 생선같은 느낌으로 연기 했어요. 장일이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것은 모두 알았을 거에요. 어떻게하든 나락으로 빠지는데, 도마 위 파닥거리는 생선, 목을 매단 뒤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생명에 대한 연민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 이장일, 성장이 멈춘 뱀파이어 같은 존재
이준혁의 연기력은 '적도의 남자'를 통해 재평가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끝연기' '멘붕연기' 등 그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찬사를 보냈다. 김영철, 엄태웅 등 뛰어난 연기력을 겸비한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절대 기죽지 않았다. 겁에 질린 장일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이준혁의 연기력은 흔들림없이 한결같이 뛰어났다.
"좋은 평가를 받으니 아주 좋죠. 무슨 일을 했을때 결과물이 좋게 나오고, 좋게 봐주신다는 것에 대해 즐겁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에 대해 안좋은 기사들이 난 적은 없지만, 좋은 기사들이 이렇게 쏟아지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에요. 개인적으로 즐겁고 감동도 받았어요."
이준혁은 이번 드라마에서 연기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외모적인 부분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꽃검사' '검사계의 아이돌' '스타 검사' 등의 수식어가 이를 증명해준다. 이준혁 역시 장일을 연기하면서 외모적인 부분에 많이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이유는 바로 성장이 멈춘 장일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외모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잘생기게 나오기 위해서는 아니고요(웃음). 장일은 외모적인 기준이 있었어요. 뱀파이어같은 느낌? 나이가 몇 살인지, 선우의 뒤통수를 친 그 순간부터 성장이 멈춘, 아이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작품에서 외모에 신경쓴 적이 없는데, 많이 신경을 썼어요.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전부요. 장일의 스타일에는 캐릭터에 대한 의도가 담겨 있었죠."
▲ 옥상에 매달리는 신,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죠
이준혁은 '적도의 남자'에서 유독 많은 감정 연기를 소화해야 했다. 격한 분노를 느끼거나, 허탈함, 슬픔 등의 감정을 한 회에 모두 담아내야 했다. 감정연기를 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던 적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감정 연기를 하면서는 그런 부분이 없었는데 옥상에서 선우의 손에 의해 매달리는 신이 있었거든요. 한 두번 했을때는 그러려니 ?는데, 여러번 하니까 소름이 돋으면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더라고요. 7~8번적도 찍은 것 같아요.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웃음)"
장일의 결말은 열려 있었다. 선우를 죽이려 했던 절벽에서 떨어졌지만, 그의 생사여부는 드라마를 통해 공개되지 않았다. 그저 장일이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죽음'을 암시했다. 이준혁은 이런 결말에 대해 '죽음은 장일을 구원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장일의 죽음을 열려있는 것 같아요. 대본상에서도 그랬고, 연출에서도 열려있는 결말이었죠.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잖아요.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맡길래요. 개인적으로 장일이 죽는 것은 구원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만약 안죽었다면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와 장일은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 사이에요. 제가 장일을 항변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더 안 좋을수도 있잖아요."
[이준혁.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장소제공 = park & 느리게]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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