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그것은 악마와의 거래였다.
악마주의 종교를 신봉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음모에 걸려든 로즈메리(미아 페로우 분)가 악마의 아기를 임신한다는 내용으로 충격을 준 로만 폴란스키의 1968년도 작품 '악마의 씨 (Rosemary's Baby)'는 악령과 초자연적인 신비주의를 결합한 오컬트 무비의 원조로 최고의 호러영화라는 찬사를 얻어냈다.
그 이후, 오컬트영화의 공식적인 관습을 만들어낸 대표작은 윌리엄 프레드킨의 1973년도 작품인 '엑소시스트'와 리차드 도너 감독의 1976년도 작품인 '오멘'이다. 이 두 작품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귀신들린 아이와 적그리스도는 오컬트영화의 공식이 되었고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의 1979년도 작품인 '아미티빌'은 귀신들린 집이라는 고전 호러영화의 주제를 오컬트영화의 한 축으로 부각시켜 수많은 아류작들이 등장했다.
귀신들린 아이의 원조로서 최고의 오컬트영화로 칭송받고 있는 '엑소시스트'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시리즈 작품들로 재탄생되었지만 원작의 완성도를 뛰어넘는 영화는 없었다.
'엑소시스트'는 노신부 메린(막스 폰 시도우 분)이 악령에 씌인 어린 소녀 리건(린다 블레이어 분)에게 악령을 쫓는 의식인 엑소시즘을 행하는 내용으로 공포 영화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오컬트 영화의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엑소시스트'는 1973년 개봉 당시 삭제했던 스파이더 워크와 십자가 자위장면을 추가하여 2000년대에 재개봉한 감독판으로 그 명성을 이어나갔다.
수많은 후속작들 중 '엑소시스트' 다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2005년 개봉한 스콧 데릭슨 감독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이다. 1976년 독일 여대생 아넬리즈 미셸의 실화를 영화화 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엑소시스트 시리즈와는 다르게 엑소시즘에 실패한 신부가 살인혐의로 기소되어 심판을 받는 과정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컬트영화의 전형성을 대표하는 신비주의와 그것을 부정하는 과학적인 이성을, 신부를 변호하는 여변호사와 신부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리려는 검사의 불꽃 튀는 법정 공방으로 각인시킨 이 영화는 신과 악마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실증해내야 하는 상황속에 실화라는 절박한 현실성으로 공포심과 공감대를 동시에 이끌어낸다.
악령을 쫓는 의식을 부각시킨 '엑소시스트'의 후일담인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런 만큼 성직자의 희생을 각인시킨 전작들과는 달리, 엑소시즘이 실패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법정공방을 통해 관습적인 오컬트영화의 구도를 답습하지 않고 여대생 에밀리의 희생으로 악마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스페인에서 제작된 마누엘 카르발로 감독의 2012년도 작품인 '엑소시즈머스(Exorcismus)'는 '엑소시스트'의 악령을 쫓는 의식인 엑소시즘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처럼 엑소시즘에 실패하여 소녀를 죽게 한 신부가 등장하여 스토리의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악령에 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녀 엠마 스스로 자신의 일탈을 위해 친구들과 우연히 악마를 부르는 주술을 행한다는 것이 다른 엑소시즘 영화와 차별화 된다. 그것은 목욕탕에서 작은 손거울을 깨트리고 거울의 파편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자해해서 피를 흘리는 엠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프닝에서 부각된다. 결국 이 자해장면은 영화 전편을 통해 인서트로 활용되면서 극적 반전을 유도한다.
15살 엠마 에반스(소피 바바서 분)는 평범한 십대 소녀다. 엠마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엠마의 부모는 자식들을 과잉보호하는 불가지론자이며 엠마와 어린 아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엄격한 재택교육을 실시한다.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엠마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위지보드를 통해 악마를 불러내는 의식을 행한 뒤 이상해진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느 날 엠마는 무시무시한 경련을 일으킨다.
부모는 딸의 문제가 의학적이거나 심리적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사들은 엠마의 경련과 이상한 행동에 대한 원인을 밝힐 수 없다.
결국 퇴마사 활동을 하는 성직자 삼촌 크리스토퍼(스테판 빌링톤 분)가 엠마에게 악령이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엑소시즘을 행하지만 악령의 힘은 점점 커지고 엠마의 고통은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엑소시즈머스'는 시대에 구애 받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오컬트영화의 주제인 엑소시즘을 가장 현대적인 반전으로 푼 작품이다. 순진무구한 아동이 아니라 부모와 갈등을 빚어온 10대 소녀인 엠마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성직자인 삼촌의 숭고한 희생도 가족들의 절박한 고통과 구원도 없이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연결시켜 반전을 꾀한다.
밀폐된 공간의 좀비물인 '알.이.씨'와 '알.이.씨 2'로 흥행에 성공한 필맥스사의 차기작인 이 영화는 악령이 들린 엠마의 변덕스럽고 비정상적인 행동과 최면상태를 기록하는 과정을 성공작인 '알.이.씨'처럼 모두 카메라로 녹화한 상태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핸드 헬드 수법의 촬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 악령 퇴치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감을 부여한다.그런 만큼 인간의 욕심과 악령의 대립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장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빠른 화면 전개로 극의 긴장감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인 극적반전은 성급한 결말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긴다. 가족에 대한 한 순간의 미움,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가족 전체를 위기에 빠트리고 가족을 붕괴시키는 엠마의 돌이킬 수 없는 욕망과 성직자인 삼촌의 욕심, 결국 그것은 악마와의 거래였다.
진정한 가족에 대한 의미를 곱씹게 해 주는 '엑소시즈머스'는 그런대로 극적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부각시켜주는 오컬트영화로서 더위를 잊기엔 안성맞춤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엑소시즈머스' 스틸컷. 사진=(주)루믹스 미디어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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