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팽팽한 힘과 힘의 승부, 승부를 가른 건 힘을 뺀 스퀴즈번트였다.
삼성과 SK의 후반기 첫 경기가 열린 24일 대구구장. 선발투수들이 일찍 무너지면서 불펜 투수들을 모두 투입하는 총력전이 펼쳐졌다. 양팀 불펜진의 팽팽한 힘대힘 싸움이 시작됐다. 6-6 동점.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10회초였다. 1사 2루. 삼성은 마무리 오승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오승환은 김강민에게 안타를 내준 뒤 임훈에게 스퀴즈번트를 내줬다. 승부는 그걸로 끝이었다.
▲ 오승환 자존심 세워준 류중일 감독
스퀴즈가 성사되기 직전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류중일 감독이 1사 2루에서 김강민을 상대하기 위해 등판한 오승환에게 정면승부를 지시한 것이다. 사실 등판하자마자 1루를 채울 경우 수비하기가 용이한 측면은 있다. 수비 입장에서 포스아웃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해졌다. 오승환은 김강민에게 안타를 내줘 1사 1,3루 위기를 맞이했다. 만약 류 감독이 김강민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을 경우 1사 1,2루가 돼 SK 벤치가 임훈 타석에서 스퀴즈번트를 지시할 수 없었다. 결국 오승환이 김강민에게 안타를 내준 게 스퀴즈번트의 도화선이 됐다. 1,3루는 수비 입장에서 홈에 태그아웃을 시도해야 하기에 더더욱 공격 측 작전 구사가 용이하다.
하지만, 모든 건 결과론이다. 비록 삼성은 경기에 패배했지만, 류 감독은 오승환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1사 2루에서 등판하자마자 마무리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하는 건 자칫 잘못하다 투수의 기를 꺾을 수도 있었다. 만약 오승환이 김강민을 잡아냈다면, 류 감독의 작전은 기막힌 승부수가 됐을 것이다. 더구나 실제 오승환은 상대 스퀴즈번트가 성공한 뒤 1사 2,3루 실점 위기에서 점수를 내주지 않는 위력을 과시했다. 스퀴즈 번트 하나가 뼈아팠지만, 오승환의 구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류 감독도 마무리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보여준 장면으로 남게 됐다.
▲ 허를 찌른 스퀴즈, 양팀은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SK 이만수 감독의 허를 찌른 작전이 적중했다. 1사 1,3루, 볼카운트 1B1S에서 임훈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에 몸을 내던지며 방망이를 갖다 댔다. 1점이 절실한 SK 입장에선 신의 한 수였다. 으레 번트는 스트라이크에만 시도하는 게 철칙이지만, 스퀴즈번트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스퀴즈번트는 타자를 떠나서 오로지 3루 주자의 득점이 목적이다. 임훈의 집중력, 작전을 충실히 이행한 3루 대주자 최정민의 기민한 스타트가 어울린 장면이었다.
삼성 내야도 인지했다. 득점하기 가장 용이하다는 1,3루 상황이지만, 마운드엔 최강 클로저 오승환이 버티고 있었다. SK도 강공으로 밀어붙이다간 득점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는 역으로 삼성도 SK가 언제든지 스퀴즈번트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뜻이다. 3루수 박석민의 재빠른 홈 대시가 이를 증명했다.
사실 오승환이라고 해도 상대의 절묘한 스퀴즈 번트에 실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석민도 임훈의 스퀴즈를 눈치채고 잽싸게 홈으로 대시했지만, 상체의 중심이 앞쪽으로 쏠린 나머지 송구가 진갑용이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셌다. 실책으로 기록됐지만, 박석민도 최선을 다했다. 그 상황에선 SK의 기민한 작전을 칭찬하는 게 옳다.
스퀴즈 번트는 어지간해선 잘 나오지 않는 작전이다. 근본적으로 주자를 진루시키거나 득점을 노리는 번트 자체의 성공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승부처에서 스퀴즈번트에 실패할 경우 역공에 휩싸이기 쉽기에 절체절명의 순간, 높은 집중력이 없인 나올 수 없는 고도의 작전이다. 물론, 역설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 작전이기에 성공하는 팀엔 짜릿함이 배가된다. 삼성의 7연승을 좌절시킨 SK가 바로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스퀴즈를 시도한 임훈(위), 홈을 파고드는 최정민(아래). 사진 = 대구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