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미팅? 딱 세번 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의 선수단 관리 스타일은 어떠할까. 이것저것 세밀하게 직접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파트별 코치들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고 자신은 시즌 운영 밑그림만 그리는 편이다. 어떤 감독은 경기 전 기자들과의 대화 도중에도 갑자기 그라운드로 나가 선수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류 감독은 거의 그러지 않는 편이다. 선수들에게 믿고 맡긴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감독 마음 먹은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삼성도 올 시즌 순탄하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건 아니었다. 5월의 마지막날에 가서야 첫 5할 승률을 찍을 정도로 시즌 초반 지독한 부진에 시달렸다. 8월과 9월에도 타선의 갑작스러운 침묵으로 위기를 겪었다. 류 감독은 2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올해 미팅을 딱 세번했다”라고 털어놨다. 달리 말하면, 류 감독이 본 올 시즌 삼성의 고비였다. 류 감독이 선수단을 모아 미팅을 한 뒤 삼성은 놀랍게도 반등세를 탔다.
▲ 초반 부진 극복, 고참의 힘이 컸다
삼성은 4월을 7승 10패로 마쳤다. LG와의 개막 홈 2연전을 모두 내준 건 충격이었다. 이어 4월 15일 대구 넥센전부터 17~19일 잠실 두산 3연전까지 4연패했다. 이후 중,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이때 떨어진 승률을 5할로 회복하는 데만 1달 넘게 걸렸다. 류 감독은 “그때 미팅을 한번 한 것 같다”라고 했다. 류 감독은 당시 미팅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류 감독의 스타일상 선수들을 격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류 감독은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 속에서도 선수들을 믿고 기다렸고 팬들의 비난 포화 속에서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인내했다. 류 감독은 “(진)갑용이나 (이)승엽이가 내가 할 말을 다하잖아. 걔들이 미팅 소집했는데 내가 따라갈 이유도 없고. 고참 둘이서 선수단을 잘 이끌어줬지”라며 웃었다.
▲ 두번째 미팅, 선수들을 움직인 류중일의 한 마디
류 감독은 두번째 미팅을 회상했다. 시즌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5할을 회복할 듯하면서도 회복하지 못했던 시기, 순위도 좀처럼 끌어올리지 못했던 시기였다. 정황상 5월이나 6월 초였을 가능성이 크다. 류 감독은 “그땐 내가 선수들을 직접 불러모았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라고 했다.
류 감독은 당시 선수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결국 우린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감독도, 선수들도 부담스러운 시기였다. 분명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선 벗어났는데 생각보다 순위 상승이 잘 되지 않았다. 선수들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좀처럼 선수들에게 말이 없던 감독이 직접 미팅을 소집했다.
효과는 컸다. 삼성은 6월 5할을 넘어선 뒤 6월 중순 이후 초상승 모드로 돌변했고, 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린 채 6월을 마쳤다. 이윽고 전반기 막판인 7월 초순 선두 독주 체제를 갖춘 뒤 10월까지 달려왔다. 감독의 말과 행동 하나가 때론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수들에게 별 말이 없는 감독이 갑자기 움직였으니, 선수들 가슴 속에 감독의 진심이 제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류 감독은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어차피 한시즌 동안 야구를 해야 한다. 그러니 즐기라고 했다. 그게 감독의 역할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 믿음? 무조건 지켜보진 않는다
흔히 믿음의 야구를 언제까지나 지켜보는 야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오산이다. 선수들을 믿는다는 말과 상황에 맞게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하는 건 차이가 있다. 류 감독은 시즌 내내 부진하던 채태인을 2군에 내린 뒤 아직도 1군에 올리지 않았고, 나태한 모습을 보이던 2년차 심창민을 9월 확대엔트리 초반까지 불러올리지 않았다.
류 감독의 ‘강단’은 세 번째 미팅에서도 잘 드러났다. “얼마전 두산전이었다. 연장 11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도 득점을 내지 못하고 결국 졌다. 얼마나 열이 받던지 끝나고 선수들을 모아서 잔소리 좀 했다”라고 털어놨다. 류 감독이 말하는 두산전은 9월 8일 대구 경기였다. 당시 삼성은 정규시즌 우승이 기정 사실화가 됐으나 정작 매직넘버 소멸 속도는 더뎠다. 태풍과 가을 장마로 뜻하지 않게 경기 취소가 잦았고, 그 바람에 타자들의 타격감각이 엉망이 됐다. 터지지 않는 방망이에 9월 삼성은 적지 않게 고전했다.
류 감독은 시즌 중반까진 선수들을 좀처럼 다그치지 않았다. 혹여 부진해도 믿음으로 감싸안았다. 하지만, 시즌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모양새가 되자 가차없이 채찍을 들었다. 이후에도 타격 감이 널을 뛴 통에 한화와 KIA에 뜻하지 않게 연패하며 우승 축배를 들 날짜가 자꾸 미뤄졌으나 류 감독은 더 이상 미팅을 소집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매일 똑같은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기다렸다 딱 한번 세게 다그치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 효과가 더 큰 것과 같은 의미다.
삼성의 정규시즌 2연패엔 류중일 감독의 농익은 선수단 관리가 숨어 있다. 류중일 감독이 주최한 세 차례 미팅, 잠자던 사자군단을 일깨웠다.
[류중일 감독, 삼성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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