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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배우 이경영이 故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영화화한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 속 프로패셔널한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으로 관객 앞에 선다.
'장의사'로 불리는 이두한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애국심이라는 명목 하에 김종태(박원상)의 인권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가차 없이 유린하는 인물이다.
이경영은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두한 역을 마다할 배우가 있냐"며 "그 역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배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애국심이라 믿으며 피도 눈물도 없이 고문을 자행했던 이근안이 진실 앞에서 무너지고 절제해 오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채 폭발하며, 이 과정에서 냉철한 완벽주의자가 아닌 인간적인 부분까지 내보이는 등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높낮이가 분명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는 영화라는 놀이터 안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다른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경영은 "배우들에게 박원상이 맡은 역과 내가 맡은 역 중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답이 반반일 수 있다. 자신의 신념으로 살다간 분을 담고 싶어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견뎌내보고 싶은 배우도 있을 것이고, 욕을 먹어도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배우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박원상도 처음엔 '형이 김종태를 하고 내가 이근안을 하면 안 돼?'라고 했다. 그만큼 고귀하게 살아간 분을 훼손시키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를 했던 것 같다"며 "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박원상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배우로서의 투박한 정직성을 볼 때 나보다는 박원상이 (김종태 역에) 어울렸던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실존인물이 버젓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이두한을 연기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을까? 이경영은 "실존인물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남영동 1985'가 단순히 故김근태 의장이나 이두한 경감의 이야기에 국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두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런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경영은 "이 영화를 이근안 경감이 봤으면 좋겠다. 보고난 후 '나는 저렇게 고문을 안 했는데'라고 해도 된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려고 목사수업까지 받으신 분이라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진실로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이해와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얼마나 예쁜 모습이겠냐"고 전했다.
또 "제작사로 전화를 주면 모시고 가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 내가 연기한 건 이두한이라는 역이었지만 누가 봐도 이근안 경감에 대한 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역할을 연기한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같이 영화도 보고 난 영화적으로 사죄를 하고 그 분은 한 삶으로서 사죄를 드리고 소주 한 잔 같이 마셨으면 좋겠다"며 "이근안 경감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희생자일 수 있다. 그걸 지시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배부르다"고 설명했다.
이경영은 '남영동 1985'를 통해 눈에 보이는 표면적 변화를 겪고 있다. 약 10년 만에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고 17년 만에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직접 밝히기도 했다. 이런 변화들은 '남영동 1985'를 더 잘 알리고 어떤 의미로든 세상에 전달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록된 것이다.
그는 "감독님께서 일반시사회때 꼭 이 말을 한다. '여러분 힘드셨죠?'라고 물으면 여기저기서 '네'라고 한다. 그러면 감독님이 '여러분은 1시간 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다. 난 끝나고 나서도 계속 아프다. 하지만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을 아파했다. 이 자리에서 1시간 50분의 고통은 그분들의 가치에 비해 견딜만한 고통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 울림이 좋은 것 같다"며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남영동 1985'는 故 김근태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1985년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 간의 기록을 담았다.
지난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을 통해 공개된 후 끔찍한 고문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화제가 됐으며, 정지영 감독의 전작 '부러진 화살'에 이어 또 한 번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오는 22일 개봉.
[배우 이경영.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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