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임창용이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야쿠르트에서 퇴단한 임창용이 13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오랜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다. 시카고 컵스와 사전 교감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임창용은 지난 7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들어갔다. 빠르면 내년 봄 공을 만질 수 있다.
▲ 트렌스포머 임창용
임창용은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에 입단했다. 해태에서 1998년까지 뛰었다. 150km가 넘는 뱀같이 꿈틀대는 직구로 주목을 받았다. 사이드암이면서 그 정도의 강속구를 뿌린 투수는 지금도 흔하지 않다. 1997년 26세이브를 따냈고, 1998년 34세이브를 따내며 최연소 구원왕에 올랐다.
변화가 찾아왔다. 1998시즌 후 해태는 모기업이 어려워지자 주축 선수들을 연이어 트레이드 했다. 임창용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임창용은 삼성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과 20억원의 반대급부로 삼성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적응이 필요 없었다. 1999년 삼성에서도 38세이브와 평균자책점 2.14로 또 다시 세이브 왕을 거머쥐었다. 2000년에도 30세이브를 따냈다.
해태 시절에 이어 운명처럼 다시 만난 김응용 감독은 2001년 그에게 선발을 맡겼다. 마무리와 선발은 준비과정과 투구 방법이 판이하다. 3년간 선발로 외도했다. 그것도 에이스였다. 2002년엔 무려 17승을 따내며 엘비라와 함께 특급 원투펀치를 구성했다. 3년간 선발투수로 무려 44승을 거뒀다. 선동열 현 KIA 감독이 수석코치에 부임한 2004년엔 다시 마무리로 돌아서서 36세이브를 따냈다. 이승엽과 마해영이 빠져나간 가운데 정규시즌 2위의 원동력이었다. ‘창용불패’, ‘애니콜’ 등의 별명도 삼성 시절 지어졌다.
▲ 도전 또 도전 오뚝이 임창용
임창용은 2004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성과 2년 18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역대 최악의 성적을 올렸다. 5승 8패 3홀드 평균자책점 6.50. 당시 선동열 감독은 권오준을 마무리로 낙점하고 임창용을 선발로 다시 돌렸으나 구위 난조로 결국 불펜 강등됐다. 2005년 임창용은 결국 팔꿈치 인대가 망가졌다.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재활이 시작됐다. 2006년엔 아무도 그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삼성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서 등판했다.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됐기 때문에 부담 없이 등판한 것. 그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돼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7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였다. 하지만, 배영수가 팔꿈치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한 가운데 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뒤 또 다시 불펜으로 강등됐다. 완벽하게 구속이 오르지도 않았고, 폼도 전성기처럼 다이내믹하지 않았다.
2007시즌 종료와 함께 그는 FA 2년 계약이 끝났다. 하지만, 또 다시 FA 자격을 얻은 건 아니었다. 국내 FA 선수들은 첫 FA 자격을 얻은 뒤엔 무조건 풀타임 4년을 채워야 다시 FA 자격을 얻는다. 삼성이 여전히 보유권을 갖고 있는 가운데 일반적인 연봉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 연봉 대폭 삭감은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돌연 야쿠르트 입단을 추진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스스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 임창용의 멋있고 아름다운 도전
모두 안 될 것이라 봤다. 한국 통산 104승 66패 168세이브 평균자책점 3.25의 임창용이었지만, 마지막 3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임창용은 보란듯이 야쿠르트와 계약을 맺었다. 2010 시즌 이엔 2+1계약을 맺었다. 연봉은 무려 15억엔(약 194억원)이었다. 4년간 야쿠르트 수호신으로 맹활약했다. 2011시즌 후 또 다시 팔꿈치에 이상을 일으켰고, 일본에서 5년간 11승 13패 28홀드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를 찍었다. 2009년엔 WBC에서 마무리로 맹활약했다.
그는 야쿠르트에서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속 160km가 나오기도 했다. 투구 폼도 사이드암과 스리쿼터 형으로 나눠서 던지면서도 완벽한 제구력을 뽐냈다.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도 경쟁력이 있었다. 비록 지난 7월 팔꿈치 수술 후 퇴단했지만, 재활을 통해 마음 속에 품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이란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실제 시카고 컵스가 재활 시간을 기다려주면서까지 그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이켜 보면 임창용은 팔꿈치 수술, 구위 저하로 흔들릴 때 더 넓은 무대를 선택했다. 삼성에서 야쿠르트로 갔을 때도 그랬고, 야쿠르트에서 컵스 입단을 추진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임창용은 내년 만 37세가 된다. 컵스 입단이 성공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은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될 경우 메이저리그 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 25인 엔트리에 들어가도 후지카와 규지 등과 치열한 마무리 보직 경쟁을 치러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와의 첫 2+1년 계약이 끝난 뒤 2010년 당시 요미우리 등 일본 명문팀에서 입단제안이 왔지만, 야쿠르트와 의리를 지켰다. 특유의 팀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젠 더 높은 꿈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여전히 재기에 자신이 있고 꿈이 있다. 컵스에서도 꽤 괜찮은 제안을 했기 때문에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미국 출국 결정을 내렸다.
그는 좀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해버리는 나약한 요즘 일부 젊은 선수들보다 훨씬 더 강인한 멘탈이 있다. 그의 도전이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한일통산 296세이브를 쌓은 임창용이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를 수확하는 그 순간, 그것은 야구 팬들에게 또다른 감동일 것이다.
[시카고 컵스 입단을 추진하는 임창용.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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