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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마지막 태극마크, 마지막 명품 리더십이다.
삼성 진갑용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갑드레곤’이다. 이에 못지않게 어울리는 별명이 ‘진주장’이다. 진갑용의 역사는 곧 주장의 역사다. 삼성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주장을 맡으며 통합 2연패를 일궈냈고, 2011년에 다시 주장자리를 물려받아 2012년까지 또 다시 통합 2연패를 일궈냈다. 삼성 내부에선 “진갑용이 주장을 하면 팀이 우승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진갑용은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주장을 그만하고 싶어했다. 납회식 때 선수단 투표에서도 최형우가 새 주장으로 선출됐다. 류중일 감독은 내심 진갑용에게 계속 주장을 맡기고 싶었으나 입맛만 다셨다. 그대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주장이 운명이다. 류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지난달 15일 WBC 출정식에서 “진갑용에게 주장을 맡길 것”이라고 했다. 진갑용은 또 다시 주장이 됐다. 진짜 생애 마지막 주장이다.
류 감독이 주장으로 진갑용을 선택한 건 이유가 있다. 그만큼 선수단을 잘 통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 선수들에게 “갑용이 형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말을 수 차례 들었다. 최고참이라고 해서 선수들을 무조건적으로 길들이거나 푸근한 형님이라며 아량을 베푼 것도 아니었다. 각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묘한 리더십이 있었다.
류 감독은 “진갑용과 이승엽이 솔선수범한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그의 리더십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이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확실히 챙긴다. 진갑용이 먼저 팀을 위해 희생하니 삼성에서도 희생하는 문화가 전파됐고, 그게 주장으로서 4차례나 통합우승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진갑용은 올해 한국 나이로 40, 불혹이다. 스스로도 “이번 WBC 대표팀 주전포수는 강민호”라고 인정한다. 류 감독의 대표팀 포수 기용 원칙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진갑용이 강민호를 치켜세워준 것만으로도 팀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진갑용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주장을 맡아 전승우승 신화의 주역이 됐다. 결승전 당시 햄스트링 부상으로 뛰기 힘들었으나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강민호의 퇴장 후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마스크를 썼다. 우승 확정 후 아픈 다리를 이끌고 그라운드에서 방방 뛰며 즐거워했던 그의 모습이 여전히 팬들의 기억에 선명하다. 훗날 베이징올림픽은 대표팀 선수들의 단합이 가장 잘 됐던 대회 중 하나로 회자됐다. 진갑용의 리더십이 5년만에 재현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회 WBC에서도 이종범이 주장을 맡아 4강 신화를 이룩했다. 2회 WBC에선 손민한이 주장을 맡았고 준우승을 일궈냈으나 정작 손민한은 어깨 통증 속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진갑용도 4년 전 손민한처럼 비중 자체가 높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2회 대회보다 전력이 약화됐고 1라운드부터 홈팀 대만을 만난다. 2라운드에선 일본과 쿠바를 넘어서야 하는 무거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진갑용으로서도 생애 마지막 주장을 마지막 대표팀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다. 그동안 그가 성공적으로 선수생활을 해왔다는 방증이자, 류 감독의 신임이 두텁다는 의미다. 후회 없는 마지막 태극마크, 후회 없는 마지막 주장 임무를 준비하는 진갑용. 이번 WBC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다.
[환하게 웃는 진갑용.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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