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등에 태극마크를 떼어내라고 하셨지.”
KIA 선동열 감독은 괴물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아무래도 다른 야구인들과는 감회가 좀 달랐다. 선 감독은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뛰진 못했으나 일본 주니치에서 1996년부터 1999시즌까지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불리며 맹활약했다. 한국과 일본을 모두 정복한 대스타였다. 선 감독은 3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야구 선배로서 류현진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안착을 기원했다. 그는 주니치 시절 스승이었던 호시노 감독의 조언을 떠올렸다.
▲ 혹독한 일본 적응기, 못하면 다 내 욕하는 것 같더라
선 감독은 1996년 주니치에서 첫 시즌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38경기서 5승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에 그쳤다. 도저히 선동열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몸 상태도 100% 아니었고, 마무리로 연착륙하지도 못했다. 호시노 감독은 그럴수록 선 감독에게 더욱 혹독했다. 선 감독에게 1996년은 시련의 시즌이었다. 1997년 1승 1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로 나고야의 수호신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 감독은 “못하니까 사람들 눈치만 보게 되더라. 다른 사람들과 얘기라도 해야 되는 데 말이 안 통하니까 더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 했다. 이어 “자기들끼리 내 앞에서 얘기를 하는데 꼭 내 욕을 하는 것 같더라. 속에 있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말도 안 통하고 답답했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외국인선수의 비애이기도 하다. 선 감독은 결국 실력으로 이겨냈고, 부단한 노력으로 일본 현지인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췄다. 선 감독의 일본어 실력은 야구인들 중에서도 단연 톱.
▲ 현진아, 등에 달린 태극마크를 떼어내라
실력으로 일본을 평정하기 전까지 정말 공만 잘 던지면 됐던 것일까. 아니다. 마음 속에 숨어있던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필요했다. 선 감독은 호시노 감독의 유명한 조언을 떠올렸다. “호시노 감독이 하루는 ‘등에 있는 태극마크를 떼어내라. 한국을 대표해서 던진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그저 너 자신과 싸워라’고 했다.”
선 감독은 “현진이도 그런 마인드가 필요하다. 얼마나 잘 던졌나. 안타 10개를 맞으면 다른 투수 같으면 그대로 무너지는 건데 1자책으로 버텨내지 않았나.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원래 그렇게 볼이 높게 뜨지 않는데. 현진이도 한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컸던 것 같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류현진은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류현진에겐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고국의 팬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마운드에선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선 감독은 “대한민국의 류현진이 아닌 한국의 류현진이라고 생각해라”고 조언했다. 호시노 감독이 자신에게 했던 조언 그대로다.
선 감독은 “10이 자신의 실력이라면 꼭 11~12까지 하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7~8만 하려고 해도 10을 갖고 있는 선수는 결국 10만큼 한다. 부담을 덜고 7~80% 실력만 발휘해도 된다. 현진이도 그런 편안한 마인드를 갖고 해야 한다”라고 했다. 원래 마인드 컨트롤이 좋기로 소문난 류현진이다. 그런 류현진도 메이저리그 무대는 결코 쉬운 무대가 아니었다. 선 감독은 해외리그를 경험한 야구 선배로서 류현진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 이 XX야, 칠 태면 쳐봐라, 인터뷰할 때도 당당해져라
선 감독은 “인터뷰할 때도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했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현진은 데뷔전 첫 타석에서 내야 땅볼을 치고 전력질주를 하지 않아 다저스 홈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류현진은 이에 대해 거듭 반성하는 모습. 류현진의 데뷔전을 지켜본 선 감독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선 감독은 그럼에도 반성은 반성대로 하면서 당당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면 결국 투구 밸런스도 무너진다. 당당해져야 한다. 마운드에서 ‘이XX야, 칠 태면 쳐봐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스스로 더 당당해져야 부담도 덜고, 마운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 선 감독이 직접 해외리그를 경험하면서 나온 생생한 조언이다.
류현진은 기본적으로 실력을 갖춘 투수다. 데뷔전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겼지만, 선 감독은 류현진이 잘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 감독은 “야구 선배로서 현진이가 진심으로 잘 했으면 좋겠다”라고 다시 한번 믿음을 보냈다. 류현진에게 지금 필요한 건 호시노 감독의 조언일지도 모른다.
[선동열 감독(위) 류현진(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미국 LA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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