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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내가 앨런 같은 상황이었으면…"
배우 박정표에게 연극 '나쁜자석' 속 앨런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자신이 맡은 역할, 그 인물을 이해하고 그 인물 자체가 돼야 했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앨런이었다.
앨런은 그래서 더 박정표를 안타깝게 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앨런의 삶은 너무도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슬펐다. 앨런을 점차 알아가기까지 박정표는 그야말로 치열한 싸움을 해왔다. '나쁜자석'이 박정표에게 더 깊게 다가온 이유다.
박정표는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나쁜자석'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지만 슬픈 내용은 맞다. 제일 친한 친구가 내 아내를 만난다면 그건 진짜 답이 안 나온다. 다 이해를 하는데 그건 이해 못하겠더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앨런은 아내 티나와 친구 폴이 만난다는 것을 모른 척 하는 것 같다.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앨런을 이해하면 그게 더 슬프다. '나한테 할 말 없냐'고 묻는 것도 앨런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연출님께 혼이 나도 작품에 해가 안된다면 앨런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 지점으로 가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중간 지점으로 가려 하니 덜덜 떨면서 울고, 그러면서도 웃어야 했다. 그냥 웃으면서 하면 오해가 되고 배우의 분석이 없어지는 것이다. 모르든 알든 표를 내면 안됐다. 내가 앨런이니 내가 제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델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내가 곧 앨런인 것이다."
자신이 곧 앨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배우 본인의 가치관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앨런, 때문에 자신이 앨런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참 많이도 생각했다. 겪어본 적도 없고 겪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이해해야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박정표 본인 만큼은 앨런의 편이 돼야 했다.
박정표는 "나는 이 상황이었으면,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 이런 사람들을 만났으면 나는 어떨까 하는 고민이 처음이다. 거기서 박정표의 성향들이 입혀지는 것이다. 내가 앨런이면 앨런 같은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너무 답답했다. 앨런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한심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욕이 나올 정도로 내 배역이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고 미웠다. 앨런을 만난다면 '너 이렇게 살면 안돼. 잘못하고 있는거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앨런을 생각하다보니 말을 못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너무 친구를 좋아하다보니 그런 건 아닐까. 사실은 나도 앨런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앨런은 모든걸 집어 삼키고 모른척 하면 모든게 제자리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앨런에 대한 애착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도 가능했다. 다른 배역이라면 이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앨런은 곧 박정표로 인해 탄생되는 인물이었다. 박정표마저 이해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인물인 것이다. 앨런을 제외한 고든, 프레이저, 폴은 이해가 가도 앨런만은 이해하기가 힘든 것도 다 그 인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 때문일 것이다.
"직업이 배우니까 하는 고민이다. 처음엔 '나쁜자석'이 너무 어렵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굳이 설명적이지 않더라도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더라. 그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울고나면 시원해지는 것처럼 '나쁜자석'은 내게 그런 작품이다. 배우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공연을 하며 생각하는건 이만큼인데 집에 돌아가면서 또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배우도 그렇고 관객도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한 후에 도착한 생각의 지점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한편 박정표가 출연하는 연극 '나쁜자석'은 9살에 만나고, 19살에 사랑하고, 29살에 내 인생이 된 네 사람. 고든, 프레이저, 폴, 앨런의 이야기를 그리며 팽팽한 긴장감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슬픈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연극 '나쁜자석' 앨런 역 배우 박정표. 사진 = 악어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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