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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 '프리실라'는 소재만으로 미리 평가하기엔 섣부른 작품이다. 성소수자들이 등장하는 만큼 일부 관객들은 다소 접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소재에만 예민한 1차원적 접근이다. '프리실라'가 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좀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배우 고영빈 역시 이같은 열린 마음을 강조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고영빈이 출연하는 뮤지컬 '프리실라'는 여장남자 '드랙퀸(Drag Queen)'의 이야기를 80~90년대의 히트팝 뮤직을 배경으로 신나는 무대로 선보인다. 톱스타들의 신나는 변신과 360도 회전을 하는 8.5톤의 대형 LED 버스 세트가 선사하는 눈부신 볼거리로 눈과 마음을 휘젓는 작품이다.
극중 고영빈은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에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스타 버나뎃 역을 맡았다.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빠졌지만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슬픔은 털어내고 긴 여정을 함께 하는 틱과 아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고영빈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소재에서 오는 예민함 때문에 관객들이 미리 걱정하는 부분이 있다. 편견 갖는 분들은 오히려 공연 본 뒤 좀 더 찔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밋밋하다고 한다. 그건 '프리실라'에 대한 오해다"고 입을 열었다.
▲ "다양함을 밀어내며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라"
고영빈은 '프리실라'를 바라보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냈다. 고영빈 역시 소재에서 오는 편견을 어떻게 해결하고 부담감을 줄여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했기 때문. 하지만 고민은 잠시뿐이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이 작품은 명품스럽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그는 "군더더기를 다 빼고 이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즐거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소재가 성소수자인데 레즈비언 빼고 다 나온다. 특별히 성소수자들을 골라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유쾌함때문인 것 같다"며 "이들은 밝고 긍정적이다. 내면의 아픔을 겉으로 희화화 시킨다. 위트도 강하고 센스도 좋다.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분들만이 이런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터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소재가 성소수자가 된 것 같다. 사실 예쁜 여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신발 옷, 꼬리 달린 옷 등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 것들이 일반 사람들이 볼 땐 즐거움이고 친숙함이다"며 "그런 것을 표현하며 군더더기 빼고 좋은 점만 보여주는 것이 명품이라 생각한다. 소재에 대한 편견 때문에 선뜻 용기내지 못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우리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좀 더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자는 목표로 한건데 그게 충족이 안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소재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없었을까. 고영빈은 "사실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그렇게까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 작품을 하는건 아니다. 편견을 없애자고 선두주자로 나서 이 작품을 올린 것도 아니다. 그런 개념은 전혀 없다"며 "성소수자든 아니든 그냥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인 거다. 무대에 올려지는 퍼포먼스고 뮤지컬이다. 판타지가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소재의 다양함을 즐길 필요가 있다"고 털어놨다.
"다양함을 밀어내는 분들은 고정관념에 갇히는 거다. 공연은 공연일 뿐이다. 누드화를 그렸다고 저질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 개념의 차이다. 전혀 다르지 않은 것들을 다르게 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성소수자들만 힘든 건 아니다. 일반인들도 많은 편견 속에서 산다. '내가 더 낫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많이 배운다. 사람이 사는 인생은 다 똑같으니까. 사람과 사람 속에 만나는 일들인데 뭐가 다르겠나."
▲ "버나뎃, 고민할 필요 없이 여자"
그렇게 편견에 대해 일침을 날린 고영빈은 버나뎃 역을 만나 자신만의 표현을 위해 연구하고 또 노력했다. 사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영빈은 굳이 원작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 최대한 무대에서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투영시키려 했다.
하지만 확실히 여자 역할은 어려웠다. 이젠 분장만 했다 하면 자연스럽게 말투도 바뀌고 여성스럽게 행동하게 되지만 시작은 어려웠다. 그는 "이제 후배들이 인사하면 '안녕~' 이러고 되게 여성스러워진다. 스스로가 자꾸 인식하지 않으면 연기하는데 불편할 수도 있다. 무슨 역할을 하든 그렇게 된다. 사실 그 역할 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으로 산다"고 고백했다.
"나같은 경우 캐릭터를 맡으면 일단 내가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게 뭘까 먼저 생각한다. 여자는 일단 손에 중점을 두고 손톱까지 신경이 있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크게 몸을 썼다. 크지만 약간의 라인이 있고 우아해 보일 수 있게 했다. 항상 무대에서 손톱 끝까지 신경이 다 가있다. 몸매는 워낙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닌데 '바람이 나라' 이후 근육을 빼는 것이 관건이었다. 웨이트를 안하고 스트레칭을 많이 했다. 내 나이 되면 아무리 살이 빠져도 약간의 똥배가 있을 수 있다. 자연스러운 건데 그것만 조금 조절했다. 그래서 코르셋의 도움도 받고 뽕의 도움도 받았다. 분장팀과 의상팀에 많이 의존했다."(웃음)
이어 고영빈은 "버나뎃은 시종일관 내 목선이 어디 가있나, 내 가슴이 얼마나 펴있나, 시선이 어디 가있나, 발끝, 손끝이 어디 가있나 두시간 동안 계속 신경 쓰고 있는다. 그게 여자? 버나뎃인 것 같다"며 "계속 얘기하면서도 머리 만지고 뭔가 비치는 것들이 있으면 나를 비춰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 트렌스젠더 연기가 처음엔 힘들었다. 도대체 트렌스젠더는 뭘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자로 사는걸 연기해야 되는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근데 연출팀에서 내게 준 커다란 팁은 고민할 필요 없이 여자라는 것이었다. 버나뎃은 그냥 여자, 여자 중에 여자다. 그 사람이 목소리가 굵건 근육이 나오건 그것도 다 받아들이는 여자라는 것이다. 그 자체다"라며 "내면적으로는 대본을 보고 버나뎃을 이해했다. 대본 안에 그런 것들이 다 깔려 있다. 버나뎃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아픔, 슬픔, 이런 것들을 다 이겨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 안에서는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을 재미있게 바꿀 수 있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는 인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 "거울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없다"
사실 고영빈은 연습중 기술적인 부분에서 제일 어려움을 느꼈다. 버나뎃은 연습 때부터 힐을 신어야 하는 탓에 하루종일 연습하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부어 고생했다. 더 여자답게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의 곡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거울을 정말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
고영빈은 "처음 여장했을 땐 사실 안심했다. 속눈썹이 이렇게 큰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화장을 하면 할수록 내 얼굴에 장난치는 것 같았는데 속눈썹을 딱 붙이는 순간 '어? 완전 다르네?' 했다. 입술을 바르니 딱 여자였다. 나름 첫 분장할 때 다행이라며 만족했다"며 "어떻게 하면 더 예쁠까 고민하며 맨날 업그레이드 된다. 간혹 망치는 날엔 분장팀을 확 째려본다. 점점 욕심이 생기다보니 머리 셋팅도 맨날 까다로워지고 점점 더 예뻐지려고 한다. '(조)성하 형 속눈썹이 더 긴데?'라며 은근 비교하고 되게 유치해진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많은 부분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힘들었지만 마음 맞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연습은 즐거웠다. 김호영, 김다현, 그룹 2AM 조권 등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고 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웃기 바빴다.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고 서로의 뜻이 잘 맞아 항상 즐거웠다. 동료들과의 신체 접촉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자연스러웠고 이는 친밀감을 높이게 했다.
특히 아이돌로 활동하며 과감한 도전을 한 조권은 고영빈에게 특별하다. 전작 '바람의 나라'에서 만난 엠블랙 지오와 더불어 조권은 확실히 배우로 보이는 후배다. 그는 "지오와 권이는 확실히 다르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번 '프리실라'에서 만난 권이는 비춰진 이미지의 조권이 아니다. 일할 때는 정말 어른스럽고 진지하다. 또 사람들에게도 너무 잘 한다. 단체 채팅방에서 가장 많이 응원하고 신경 써주는 사람이 권이다. 그런 면에서 조권과 지오 두 친구는 배우로서 앞으로도 굉장히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좋은 동료들과 호흡하는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는 더욱 높아졌다. 커튼콜 때 보상 받는다는 희열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 자신을 보고 신나게 즐기는 관객들을 보면 위안이 되고 힘든 것도 싹 날아간다. 그는 "어디 가서 이렇게 신나게 춤 추겠나. 지금 클럽도 안 다니고 나이트도 안 가는데 이렇게 소리 지르며 춤 출 곳이 있다는 게 신난다"고 밝혔다.
"'프리실라'는 명품이다. 신나게 재미있게 놀고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 버리는 투자 가치가 있는 휴가법이다. 작품도 너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인생 배역 만났다', '제2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기분 좋은 소리도 많이 듣는다. '프리실라' 같이 소재가 다양한 작품들이 오는건 대환영이다. 소화하려고 도전하는게 배우가 스스로에 대한 의미부여도 되고 재미도 있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에서 계속 다양한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다. 관객들에게 재미도 주고 나 스스로도 나로 인해 재미를 찾고 싶다. 무대 위에서 신나게 웃고 뛰고 싶다. '프리실라'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작품 중 손 꼽는 작품, 애착 가는 작품이다. 1순위로 꼽히지 않을까."
한편 고영빈이 출연중인 뮤지컬 '프리실라'는 오는 9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배우 고영빈. 사진 = 설앤컴퍼니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DB]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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