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전쟁터로 갑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우완투수 이태양(한화 이글스)은 올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바꿨다. 지난해까지 달던 55번을 180도 뒤집은 22번이다.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윤규진이 기존 번호를 찾아가면서 새 등번호를 고민했고, 정민철 투수코치와도 상의했다. 그리고 한승택(FA 이용규 영입에 따른 보상선수)의 KIA 타이거즈 이적으로 공석이 된 22번을 받아들었다.
등번호를 바꾸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그런데 22번은 55번을 180도 뒤집은 숫자. 지난해까지는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올해부터는 정상을 향해 독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태양은 "22번을 받으려고 고민했는데, 정 코치님도 마침 22번을 추천하셨다. 1990년생 말띠인 이태양이 갑오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고 있다.
번호만 바꾼 게 아니다. 시즌 전부터 이태양은 철저히 준비했다. 비활동 기간에도 팀 선배 정민혁과 함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대전구장에서 캐치볼로 몸을 풀었다. "지난해까지 못 했던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각오였다. 지난해까지 1군 32경기(5 선발)에서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6.23에 그쳤다. 김응용 한화 감독에게 직접 안부 전화를 건넬 정도로 넘치는 배짱을 마운드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김 감독도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며 이태양의 훈련 일정을 직접 체크했다는 후문.
당시 이태양의 목표는 어찌 보면 소박했다. "캠프 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 꼭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선발 등판한 5경기에서 3패 평균자책점 7.71로 좋지 않았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뜻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초반에는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낙심할 만도 한데, 이태양은 이를 기회로 만들었다. "많이 던지다 보니 조금씩 감이 왔고, 이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공을 놓는 포인트도 몸에 익었다"는 설명. 140km대 초반이던 직구 최고 구속은 이제 148km까지 나온다. 포크볼과 슬라이더의 움직임도 상당히 예리해졌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포크볼도 힘을 빼고 던지니 훌륭한 '위닝샷'이 됐다.
문제는 5월까지 올 시즌은 물론 통산 1승도 올리지 못했다는 것. 김 감독도 "5회 2아웃 상황에서 등판시켜 볼까"라는 농을 던지면서도 "승리는 의미 없다. 많이 기여했으니 고과표는 승리보다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믿음을 주는 선발투수로 거듭났고, 지난 6월 1일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꿈에 그리던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그것도 7이닝 6탈삼진 1실점 호투로.
이후는 승승장구였다. 6월 한 달간 3승 1패 평균자책점 2.52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이태양 국가대표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1차, 2차 엔트리에 모두 승선한 이태양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아시안게임에 대한 욕심은 꾹꾹 누르고 있다"던 그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한다. 뽑힌 것 자체로 감사드린다. 보직에 상관없이 정말 열심히 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지난 15일에는 대표팀 첫 소집에 참가해 "장비를 지급 받고 나니 (대표팀에 뽑힌 게) 더 실감난다"며 활짝 웃었고, 전날(18일) LG 트윈스와의 평가전서는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마운드에 올랐으니 기분이 남다를 터. "벅차고 설??? 평가전인데도 긴장됐다."
이제 본격 행보가 시작됐다. 류중일 감독과 이태양을 비롯한 선수단은 19일 선수촌에 입촌했다. 이태양은 이를 "전쟁터에 간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비장하다. 이제 22일 태국과의 대회 첫 경기 준비만 남았으니 더욱 그렇다.
이만하면 인생역전이다. 지난해까지 단 1승도 없이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평범한 투수가 이제는 팀의 에이스를 넘어 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극강 타고투저 속에서 27경기 7승 8패 평균자책점 4.70, 토종 선수로는 공동 2위인 퀄리티스타트 14회. 반짝이 아닌 꾸준한 활약으로 존재감을 입증했다. 실질적인 풀타임 첫 시즌에 국가대표로 뽑힐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무조건 금메달이 목표다. 보직에 상관없이 힘을 보태겠다. 그리고 형들 뒷바라지 정말 잘해야 한다"는 이태양의 각오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인천 마운드에 떠오르는 태양은 얼마나 뜨거울까.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LG와의 평가전에서 역투하는 국가대표 이태양(첫 번째 사진), 올 시즌 앞두고 인터뷰 당시 이태양. 사진 = 마이데일리 DB]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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