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현실적으로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3점슛 성공, 경기수, 감독상, 관중동원상, 심판출전상 등에서 기념상을 시상한다. 핵심은 정규시즌 누적기록. KBL은 2003-2004시즌 개인기록 밀어주기 사태 이후 한 시즌 기록에 대한 시상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각 세부 분야에서 일정한 누적 기준을 넘어선 선수에게 기념상을 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왔다.
좋은 취지다. KBL 기록을 풍성하게 해준 선수들을 치켜세우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 기준. 2번 이상 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 22일 LG전서 정규시즌 통산 900경기에 출전한 주희정은 25일 삼성과의 홈 경기서 KBL로부터 900경기 출전 특별기념상을 받았다. 기념상 앞에 ‘특별’이 붙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두 번 받기가 너무 어렵다
일단 KBL이 정한 기념상 세부기준을 살펴보자. 득점은 5000점, 어시스트는 2000개, 리바운드는 3000개, 스틸과 3점슛은 1000개, 통산 출전은 500경기를 돌파하면 받는다. 그런데 이후 다시 그만큼의 기록을 세워야 또 다시 기념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5000점을 올려 기념상을 받은 선수가 같은 부분서 또 기념상을 받으려면 다시 5000점을 추가해 10000점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KBL 통산 10000점을 넘긴 선수는 서장훈, 추승균 등 단 2명.
물론 기념상을 한 번 받는 것도 영광이다. 세부 기준을 너무 후하게 잡으면 기념상의 의미가 퇴색된다. 하지만, 득점의 경우 역대 5000점을 넘은 선수는 27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현역은 6명. 당연히 희소가치가 있다. 이들이 10000점을 기록하는 게 가장 빛난다. KBL은 6000점, 7000점, 8000점 돌파 역시 의미가 있지만 그냥 넘어간다.
경기수 역시 마찬가지. 500경기를 돌파한 선수는 총 24명. 이들 중 현역은 7명(주희정 임재현 송영진 김주성 박지현 이현호 오용준). 이들이 이 부문에서 다시 기념상을 받으려면 1000경기를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600경기, 700경기, 800경기 돌파는 굉장히 의미 있다. 주희정의 900경기 출전 가치도 이미 언론을 통해 수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KBL은 기념상 기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기록의 순간을 그냥 지나쳤다.
세부 기준에 집착한 나머지, 의미 있는 기록들을 그냥 많이 넘겼다. 일례로 서장훈의 통산 득점(13231점, 1위), 리바운드(5235개, 1위)는 엄청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KBL 기준에 따르면 서장훈은 통산 득점 두 차례, 리바운드는 한 차례 기념상을 받았다. KBL은 서장훈의 통산 5000리바운드를 그냥 넘겼다. 지난해 주희정의 5000어시스트도 마찬가지.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기념상을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 반면 100승 단위로 시상하는 감독상의 경우, 상대적으로 기념상을 받기가 쉽다.
KBL은 서장훈의 5000리바운드 대기록을 그냥 넘기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부랴부랴 뒤늦게 ‘특별’ 기념상을 제정 및 시상했다. 이번 주희정의 900경기 출전 역시 정식 기념상이 아닌 특별 기념상. 이런 식으로 특별기념상이 남발되면 애당초 KBL이 정한 기념상의 기준은 퇴색되고 만다. 당연히 현실적인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기념상을 남발하라는 게 아니라, 세부적인 기준을 조정해 레전드들의 기록을 기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SK와 삼성의 훈훈한 광경
SK는 25일 홈 경기서 주희정의 901경기 출전을 치하했다. 900경기가 아닌 901경기째. 사실 22일 LG 원정서 900경기 기념 세리머니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국내에선 원정 팀 선수가 대기록을 세우면 원정 팀이 홈 팀 눈치를 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한 농구관계자는 “미리 말만 해주면 홈 팀도 약식 이벤트 정도로는 협조해줄 수 있는데 지레짐작으로 말도 꺼내지 않는 것 같다”라고 아쉬워했다.
이 모든 게 통산 대기록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일에 소극적인 국내농구계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됐다. 진정한 대기록이라면, 어느 선수가 어느 경기장에서 달성하더라도 기념하고 축하하면 된다. 지난 15일 미국프로농구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통산 득점랭킹 3위로 뛰어올랐을 때, 경기장은 LA 스테이플센터가 아닌 미네소타의 홈구장 미니애폴리스 타깃센터였다. 아예 경기도 중단했고, 약식 이벤트가 진행됐다. 두 팀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나눴고 미네소타 홈 관중들은 브라이언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도 훈훈한 광경이 벌어졌다. SK가 KBL과는 별도로 주희정의 900경기 기념상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하프타임에 문경은 감독과 후배 박상오, 주희정의 축하 메시지를 상영했고, 주희정에게 직접 900경기 기념 유니폼이 담긴 액자를 전달했다. 상대팀 삼성도 이상민 감독이 직접 축하 꽃다발을 전했다.
주희정은 “삼성이 팀 상황도 좋지 않은데 이상민 감독님이 직접 축하해주셔서 감사했다. 사실 500경기 출전도 쉽지 않다. 그동안 KBL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다. KBL이 이런 이벤트를 강화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된다. 후배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팬들이 KBL에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풀어놨다. KBL과 농구계가 대기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
[주희정 900경기 출전 특별시상식.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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