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김도현, 김재범은 연극 '데스트랩' 초연 멤버다. 각각 시드니 브륄, 클리포드 앤더슨 역을 맡아 매니아는 물론 일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도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 '데스트랩'. 김도현, 김재범은 서로에게 남다른 에너지를 받으며 열연중이다.
연극 '데스트랩'은 1978년 미국 코네티컷 웨스트포트의 한 저택을 배경으로 한 때 유명한 극작가였던 시드니 브륄과 그의 제자 클리포드 앤더슨이 '데스트랩'이라는 희곡을 차지하기 위해 펼쳐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고 스릴 넘치게 담아낸 작품이다.
'데스트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만큼 배우 본인의 완급조절과 관객들과의 밀당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초연 배우들이라고 편한 것은 없다. 매번 새롭고 매번 다른 것을 느낀다.
김도현은 "익숙한 공연이면 보통 편해져야 되는데 '데스트랩'은 그렇지가 않다"며 "일단 코믹스릴러라는 장르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뗐다.
스릴러 장르는 보통 반전의 묘미가 있는데 그 묘미도 똑같은 것을 계속 보면 재미가 사라진다. 더구나 연극이라는 장르는 공연 기간이 길어 재관람 관객의 경우 매번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관객들은 처음 보기 때문에 반전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공연 시작 전 멘트가 나올 때 관객 반응을 보면 오늘 관객들이 재관람하는 분들이 많은지,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은지 느껴져요. 근데 '데스트랩'은 대체적으로 반반이에요. 보신 분들이 또 보면 반전의 묘미가 약할 수밖에 없고, 코미디도 웃기지 않을 거라 부담감이 있는데 그 대신에 무엇으로 흥미를 줄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요. 여러번 보는 분들도, 처음 보는 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어려워요.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매 회 긴장되죠."(김도현)
여러번 본 관객, 처음 본 관객의 비율이 비슷하기에 김도현은 항상 관객들이 '처음 보는 관객'이라고 생각하며 무대에 오른다. 익숙해진 탓에 안일한 연기를 펼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그래서 더 라이브를 즐기고 관객과의 호흡까지도 중요하게 여기려 한다.
"항상 오늘 보는 관객들은 처음 보는 관객들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는 게 언제나 맞아요. '내가 오늘 힘드니까 살살해야지. 뭔 일 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는 없죠. 그랬다가 오늘만 보고 영원히 안 볼 관객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기억이 그렇게 남게 할 수는 없어요. 라이브고 페어도 다 달라 다른 호흡이 있기 때문에 관객 반응을 수시로 느끼는데 분위기에 맞게 본능적으로 맞춰가는 부분이 있어요. 러닝타임까지 달라지고 중간 나오는 유머코드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고, 액션도 갑자기 나올 때가 있어요. 약간씩 다른데 처음 보는 분들은 그 자체로 흥미 있을 것이고, 여러번 본 분들도 또 다른 부분이 나와 재밌을 거예요. 오늘 보는 공연과 똑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하려는 바람은 있어요."(김도현)
김재범의 경우 관객들 반응이 있으면 훨씬 힘이 나지만 그렇다고 굳이 신경 쓰지는 않는다. 무대 위에서 재밌고 즐겁게,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밖에 없다고.
"그래도 이게 좀 많이 해서 그런지 괜찮은데 '데스트랩'은 대사량이 좀 많아요. 그래서 이번 같은 경우에는 매일 매일 첫공 같은 느낌이 있었죠. 그래도 초연 때보다 마음이 편해요. 대사를 잊어도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거든요. 불안하진 않아요. 즐거우니까. 연습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공연하면서 다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반응이 좋든 안좋든 재밌게 보신다고 믿고 최선을 다해서 해요. 계속 하다가 너무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좀 쓰게 되는데 일부러 그런다기보단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김재범)
그렇다면 초연과 다른 부분은 무엇일까. 김재범은 "다르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초연 때는 대사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다르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다르게 해야지' 하는 생은 있다. 매번 생방송이다보니까 그 때 그 때 다를 수 있고,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하려다 보니까 관객들도 그런 재미 때문에 오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래도 초연 때 몰랐던 부분을 재연에서 알게된 것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 때 다 알았다"고 답했다.
김도현 역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조금 편안해진 부분은 있다. 그는 "초연 때는 조마조마한게 있었다. 심지어 이게 웃길지, 무서울지도 몰랐다"며 "공연이 올라가고나서 초반까지도 게속 헷갈려 했다"고 털어놨다.
"관객들이 웃어도 '우리가 웃긴건가', '어설퍼서 웃었나' 싶고 놀라도 '무서워서 놀랐나', '깜짝 놀라서 놀란건가' 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시기가 있었죠. 또 그 때는 코믹이냐, 스릴러냐,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어요. 부분부분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지만 어느 부분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이번에는 의견이 잘 맞았어요. '데스트랩'은 웃기자고 마음 먹으면 배우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요. 그러다가 여기부터 진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때부터 또 서로 자제를 하죠. 그런 것들이 잘 맞아 떨어지면서 웃음과 스릴러 사이의 간극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아요. 서로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한 사람은 웃기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진지하게 하면 서로 충돌이 있을 수 있잖아요."(김도현)
"사실 초연 때는 접근 방식이 조금 달랐어요. 어떤 배우들은 '스릴러가 아니냐'며 진지하게 가려고 했고 어떤 배우들은 '코미디가 큰데 왜 빼려고 하느냐'며 코미디적으로 다가갔죠. 의견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사실 재밌는 작품이 된건 (김)도현 형 역할이 컸어요. 저는 '데스트랩'이 그냥 스릴러인 줄 알았어요. '왜 코미디 스릴러라고 했지?' 싶고 대본을 읽어도 웃긴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진지하게 가려고 했어요. 근데 동현 형이 코미디적인 부분들이 많다고 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해됐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재연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의견 조율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더 탄탄해진 것 같아요."(김재범)
코믹 스릴러. 어울리는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그렇다고 절대 함께 갈 수 없는 장르라고 하기엔 그 자체가 꽤 흥미로운 장르다. 때문에 김도현, 김재범도 장르적 특성에 더욱 집중한다.
"만약 정리를 한다면 스릴러가 맞을 거예요. 작품 자료를 찾아 보다가 브로드웨이 광고문을 하나 봤는데 '블랙코미디'라고 홍보를 하더라고요. 그 때부터 '코미디인가보다' 생각했죠. 대본을 보다가 딱 두 부분에서 코미디를 생각했는데 클리포드가 자기 친구 이름을 '마르게리따 끌레로프스키'라고 말하는 부분과 마지막에 시드니가 석궁을 조준하는 거였어요. '마르게리따 끌레로프스키'는 이름이 굉장히 모순적이잖아요. 물론 클리포드가 즉흥적으로 지어낸거지만 미국 사람들 입장에선 어색한 이름이죠. 하나는 이탈리아어, 하나는 러시아어. 한국 사람이 듣는걸로 치면 '장쯔이 야마토시' 이런 느낌이잖아요. 이건 웃기려고 쓴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요."(김도현)
'장쯔이 야마토시'라는 이름에 김재범은 웃음이 빵터졌다. "와. 진짜 생각 못했다", "다음 공연에 해볼까"라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자 김재범은 석궁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갔다.
"시드니가 클리포드에게 방에서 석궁을 갑자기 쏘는데 그게 작은 석궁도 아니고 완전 크잖아요. 과거 전쟁에서 석궁을 최초로 개발한 국가가 활을 쏘는 국가와의 전쟁에서 다 이겼다고 알고 있어요. 그만큼 활보다 사거리가 훨씬 먼 거예요. 근데 그렇게 먼 거리에 쏘는 석궁을 집에서 굳이? 물론 총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굳이 서재에서, 계단 밑에서 석궁을 쏘는게 너무 웃기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약간 바추카포 느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작가님 의도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리딩할 때 '석궁을 든다'는 지문에 빵 터져서 완전 꽂혔어요. 그 때부터 '이건 코미디다' 했죠. 진지할 때마다 웃기니까 이건 100% 코미디구나 했어요.(웃음)"
초연 멤버로서 2차 팀 새로운 얼굴 시드니 역 박윤희, 클리포드 역 주종혁과의 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새로웠어요. 다른 사람이니까. 특별히 어떤 부분이라기보다 그냥 새로운 사람이잖아요. (주)종혁이의 클리포드는 착함과 순수함이 있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저렇게 착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나쁜놈인데도 어색하지 않은, 순수한 열정이 넘치는 클리포드처럼 보였어요. '저렇게 해석을 할 수 있구나' 했죠. 애가 착해. 참 착한 게 깔려 있고 거기에 클리포드가 입혀지는 거니까 착해 보이더라고요."(김재범)
"(박)윤희 형님 보면 이제까지 시드니 중에 제일 근접해요. 처음에 '내가 시드니를 하기엔 나이가 잘 안 맞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웠던 부분이 있는데 윤희 형님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정작 비슷한 나이와 느낌임에도 올드한 호흡을 갖고 계시지 않죠. '내가 오바했구나' 싶어서 연습 기간 때 좀 부끄러웠어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을텐데.. 나이는 신경 쓰지 않게 됐죠. 윤희 형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스트랩'에 와주시는 것이 굉장히 기뻤어요. 개인적인 철학에 관련된 일이긴 한데 저는 연극계가 다 어우러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약간 부류가 갈라져 있는 느낌이 있거든요. 윤희 형님 덕분에 우리가 함께 섞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후배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캐치해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임해 주시니 굉장히 아름다운 조화였죠."(김도현)
김도현, 김재범은 무대 위에서 디테일에 신경 쓴다고 했다. 김재범은 "디테일을 더해야 말도 안되는 애드리브나 행동들이 안 나올 수 있다"며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한다. 얼음이 안 얼었는데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면 빠지는 것처럼"이라고 설명했다.
"클리포드의 경우 사이코패스보단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뭐든 상관 없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좋은거든, 나쁜거든 내 목적만 이루면 되는 거죠. 죽이든 말든, 열심히 하든 말든, 내 몸을 팔든 말든 다 상관 없이 내 목적만 이루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죠."(김재범)
김도현은 "'데스트랩'은 아사모사한 선을 잘 유지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진지한 경계선, 아사모사한 그 선이 웃긴 것"이라며 "우리 나라로 치면 DMZ 같은 느낌이다. 이건 북한도 아니고 남한도 아닌 그 선 말이다"고 말했다.
"저 배우가 이 배우에게 말한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시드니가 클리포드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저건 분명히 김도현 배우가 말한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시드니가 말한 거고 그런 것들이 어렵지만 재밌죠. 그런 부분에서 디테일을 많이 생각해야 편해요. 많이 고민한 장면일 수록 그 선이 잘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시드니가 클리포드에게 '뮤지컬배우들도 그렇게 연기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관객들이 웃어요. 뮤지컬배우 김도현이 뮤지컬배우 김재범에게 셀프디스를 하며 말하는 느낌이 드는거죠. 하지만 극중 시드니가 클리포드에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해요. 그 시대는 브로드웨이가 성행할 시기잖아요. 시드니는 연극 작가로서 뮤지컬을 비하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부분과 호흡들이 재미에요."(김도현)
마지막으로 김수로프로젝트 9탄인 '데스트랩'에 출연하는 만큼 김수로 프로듀서에 대해 물었다. 벌써 12탄까지 나온 김수로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준 배우들이 두 사람이기 때문. 특히 김재범은 김수로 총애 속에 그와 김수로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김재범은 "(김)수로 선배님이 만든 로브라더스의 배우니까 '이 작품 해볼래?' 첫번째로 물어봐준다. 작품이 괜찮으니까 같이 하게 된다. 어느새 굉장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더라"며 "김수로 프로젝트가 많이 인정도 받고 있고, 그러니까 나도 기쁘고 영광이다"고 전했다.
"공연하는 컴퍼니들이 몇 집단 있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좋은 작품을 올리는 프로젝트 팀이 김수로프로젝트예요. 저 같은 경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작품을 기획하시고 제안을 해주시죠. 당연히 기분 좋게 하게 되는 거예요.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을을 항상 계획해서 이렇게 맡겨 주시니까 저로서는 되게 좋아요. 김수로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원하는 흐름을 빠르게 캐치한다는 거예요. 라인업들을 보면 결과가 어떻든 기획 아이템이 되게 신선하고 당겨요."(김도현)
김수로프로젝트에 대한 신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김수로프로젝트 9탄 '데스트랩' 무대에 즐겁게 오르고 있고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데스트랩'은 여름에 보시면 굉장히 시원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반전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특히나. 오싹하다가도 웃고싶고 이런 분들이 와서 봐도 재밌고 연극에는 전혀 관심 없는 분들이 와서 봐도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재관람 하는 분들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서둘러서 발걸음을 재촉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김재범)
"김재범이 한 얘기 다 받고 동의해요. 누가 봐도 지루하거나 너무 가볍다거나 내 취향은 아니라거나, 그런 느낌이 들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시드니를 연기하면서 많은 장르에서 요구되는 패턴을 다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해요. 무서운 것, 정극스러운 것, 싼마이스러운 것, 로맨틱한 것, 야한 것, 슬픈 것 등 모든 장르에서 나오는 굵직한 감정선을 시드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모습으로 표현하려 노력하죠. 이제까지 했던 작품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데 그만큼 혼신을 다해서 하고 있어요. 다 잘 하는 축구선수 박지성 같은 작품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김도현)
한편 연극 '데스트랩'은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김도현 김재범. 사진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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