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인천 이후광 기자] "나는 참 복이 많은 선수였다."
인천 전자랜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현호(36)가 21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전자랜드는 울산 모비스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에 앞서 이현호의 은퇴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경복고-고려대를 나온 이현호는 지난 2003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8순위(전체 18순위)로 서울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데뷔 시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2라운드 출신임에도 신인왕을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삼성에서 3시즌을 보낸 뒤 2006-2007시즌부터 안양 KT&G(현 안양 KGC)로 팀을 옮겨 4시즌 간 활약했다.
전자랜드 유니폼은 2009-2010시즌부터 입었다. 이현호는 주장과 플레잉코치를 맡으며 팀이 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이날 전까지 프로 통산 551경기(플레이오프 40경기)에 나서 끈질긴 수비와 허슬플레이로 3차례 우수수비상을 수상했다. 올 시즌은 무릎 부상으로 아쉽게 16경기 밖에 치르지 못했다.
다음은 이현호와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
"먼저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린다. 팬들과 구단 관계자분들게 감사드린다. 오랜 프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능력보다 내가 큰 가르침을 주신 여러 감독님들 덕분이었다. 코트에서 많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충분히 즐겼다. 영광의 상처를 뒤로 하고 은퇴를 결심한 것도 내 능력 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후배들이 나를 대신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제는 한발 물러서서 농구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
-올해 FA 2년 계약을 맺었는데 1년을 더 뛸 수 있지 않았나.
"다음 시즌을 뛰려면 수술이 필요했다. 수술을 하면 재활에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솔직히 6개월을 투자해서 1년을 더 뛸 자신이 없었다. 선수는 코트에서 뛸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경기에 뛰는 게 중요했다. 국내 선수가 단신 외국 선수들에게 쉽게 당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은퇴를 결심한 부분도 있다. 몸이 건강했다면 단신 외국선수를 잘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웃음)"
-은퇴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올 시즌 성적이 좋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또한 13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짧게 지나갔다. 내가 별로 잘한 부분도 없는데 은퇴해야 한다는 현실이 아쉽다. 후배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를 전해주고 싶다."
-프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모든 경기가 다 기억이 나지만 전자랜드에서 비시즌에 운동했던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되돌아보면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감독님하고 이를 갈면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훈련했었다. 앞니가 부러졌을 때 이가 목젖에 붙어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냥 이가 없는 상태로 경기에 뛴다고 했었다. 무모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2라운드 출신 신인왕이 선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지금 말하면 연습생 수준으로 팀에 입단했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선수였다. 당시 김동광 감독님이 좋아하는 힘있는 농구를 했었다. (서)장훈이 형의 가르침도 도움이 됐다. 여태까지 농구하면서 선배들이 다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유도훈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무모한 농구에서 생각하는 농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감독님이 아닌 유도훈 형이다. 감독님은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쓰시는 좋은 형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후배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프로 2, 3년차 시절에 막무가내로 생활했던 적이 있었다. (서)장훈이 형, (이)규섭이 형이 있어서 경기에 못 뛰어 경기에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은 어린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하신다. 어린 선수들이 내가 헛되이 보냈던 2년처럼 생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봉을 높일 수 있고 기술을 더 연마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아쉽다. 어린 선수들이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후 계획은.
"구단과 감독님이 코치 제의를 하셨다. 그런데 거절했다. 13년 간 가족에게 잘하지 못했다. 1년 동안은 가족에게 충실하겠다. 코치를 하면 가족에 충실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는 주부 역할을 맡겠다. 아직 분리수거도 한 번도 안 해봤다. 집에 가면 손 하나 까딱 안했었는데 이제는 도움이 되고 싶다."
-팬들이 어떤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나.
"농구를 잘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열심히 햇던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꾸준히 열정적으로 했다. 그런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은퇴 기자회견하는 이현호(첫 번째 사진), 이현호(두 번째 사진). 사진 = KBL 제공,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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