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두산은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외국인타자 닉 에반스의 부진, 일부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 등 악재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잘 나간다. 단독선두다. 28일 잠실 SK전을 잡으면서 16승5패1무. 구단 역사상 4월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인 선발진, 짜임새를 갖춘 타선, 확실한 필승계투조 구축이 선두질주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관계자가 두산의 시즌 초반 질주의 숨은 비결로 탄탄한 수비력을 꼽는다. 실제 두산은 리그에서 수비력이 가장 견고하다. 13개의 실책으로 최소 2위다. 수비율 역시 0.985로 2위.
▲과감한 시프트
두산은 수비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실시한다. 2루수 오재원이 정위치에서 뒤로 물러나 외야 잔디에 위치,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왼손타자의 한 방에 대비하는 건 일반적이다. 반대로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오른손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경우 내야수들이 전체적으로 좌측으로 치우쳐 수비를 펼치는 것 역시 일반적인 시프트다.
두산은 좀 더 과감한 시프트를 즐긴다. 23일 잠실 한화전. 4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는 윌린 로사리오. 2루수 오재원이 1,2간을 비우고 2루 베이스 뒤, 즉 중견수 앞으로 이동했다. 유격수 김재호는 3,유간에서 3루쪽으로 좀 더 이동했다. 1루수 에반스는 정상위치에서 약간 왼쪽으로 이동했다. 마이클 보우덴-양의지 배터리는 초구 바깥쪽 볼을 시작으로 서서히 몸쪽으로 이동했다. 우타자 로사리오의 잡아당기는 타격을 유도, 타구를 중앙 혹은 좌측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
실제 로사리오는 1B1S서 몸쪽으로 들어오는 3구를 공략, 2루 베이스에서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방향으로 타구를 날렸다. 그러자 2루 베이스 뒤에 있던 오재원이 좌측으로 이동, 재빨리 걷어냈다. 타구가 빠르고 깊었다. 오재원은 역동작으로 1루에 원 바운드 송구를 했지만, 로사리오는 세이프됐다. 결과적으로 시프트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로사리오의 타구를 중앙 혹은 좌측으로 유도한 배터리와 오재원의 센스는 대단했다. 약간 여유가 있는 3점차, 타격감이 썩 좋지 않은 타자의 특성 등을 감안한 극단적인 결정이었다. 이후 오재원은 6회초 선두타자 김태균 타석에서 2루 베이스 우측 뒷편에 위치, 기어코 김태균을 땅볼아웃 처리했다. SK와의 주중 3연전서도 이런 식의 과감한 시프트가 몇 차례 있었다.
▲지켜보는 김태형 감독
김태형 감독은 포수로 현역생활을 마친 뒤 배터리코치로 오래 활동했다. 그 누구보다 야수들의 세밀한 수비 움직임 조율에 능통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부임 후 야수들의 과감하고 극단적인 시프트에 대해 거의 터치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움직였다 싶을 때 조금 조정해줄 때가 있다. 그리고 경기 중 특별히 감이 올 때만 시프트를 직접 지시한다"라고 했다.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은 "재원이나 재호는 알아서 수비 위치를 조정한다. 강석천 코치도 조금씩 조정하는데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전력분석팀, 수비코치, 선수들이 알아서 시프트를 잘 활용하는 데 감독까지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오재원과 김재호의 창의성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김 감독은 "요즘에는 가만히 있다가 포수가 움직이는 걸 본 뒤 순간적으로 움직일 때도 있다"라고 했다. 배터리가 선택한 구종, 코스에 따라서도 타자의 타구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다. 김 감독은 "시프트는 확률이다. 어차피 벤치 지시로 1년에 열번 성공하기도 어렵다. 선수들이 알아서 잘 움직인다"라고 했다. 두산 내야진의 시프트 응용력은 절정에 이르렀다.
▲믿음과 경험
두산 수비시프트의 핵심은 역시 김재호-오재원 키스톤콤비다. 두 사람은 2012년부터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현재 KBO리그에서 두 사람보다 오래된 키스톤콤비는 거의 없다. 둘 다 기본적인 캐치능력과 송구능력, 순발력이 리그 최정상급이다. 탄탄한 기본을 밑바탕 삼아 과감하고 극단적인 시프트를 통해 수비 응용력을 뽐낸다.
또한, 한국시리즈, 프리미어12 등 수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시프트 노하우가 쌓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믿음은 확고하다. 실제 경기 중 두 사람이 간단한 손짓 1~2가지를 통해 즉석에서 수비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1~2발 이동으로 안타가 될 타구를 땅볼 아웃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김태형 감독은 "시프트는 데이터, 감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재호와 재원이는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다. 전력분석의 도움도 있고, 강석천 코치도 과감하게 시프트를 지시한다. 확신을 갖고 움직인다"라고 했다.
김재호와 오재원의 수비 안정성과 시프트 응용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튼실한 센터라인의 중심축이다. 투수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안타가 될 타구를 걷어내 아웃으로 둔갑시키면 투수의 자신감은 물론, 팀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1~2점차 박빙승부서 강인해질 수 있는 요소. 두산이 시즌 초반 선두를 질주하는 숨은 원동력이다.
[김재호와 오재원.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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