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WKBL이 첼시 리(KEB하나은행)의 혈통 사기극을 대하는 태도에 진정성과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5일 이사회에서 첼시 리와 2명의 에이전트, KEB하나은행에 각종 철퇴를 내렸다. 논란의 원흉인 혼혈선수제도는 폐지했다. 당연한 조치들이다. 이번 사태는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선수 1명과 에이전트 2명이 2015-2016시즌에 땀과 열정을 바친 나머지 5개 구단과 농구 팬들을 농락했다. 한국농구, 아니 한국체육사의 치욕이다.
이 과정에서 WKBL의 조직적 결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WKBL은 리를 국내선수 자격으로 뛸 수 있게 최종적으로 허용한 주체다. 2015-2016시즌을 앞두고 하나은행과 함께 리의 신분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즌 초반에는 기자들에게 문서의 일부를 공개하면서까지 리의 한국혈통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리와 에이전트들의 사기극에 속아넘어갔다. 출범 19년차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행정적인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걸 입증했다.
▲무책임한 뒷수습
신선우 총재는 이사회 직후 "연맹이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나왔다면 이사회에서 얘기가 나왔을 텐데,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부분이 없다"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기소중지했다. 굳이 국내에 들어와서 검찰 수사에 응할 이유가 없는 리와 에이전트들이 시간을 끈다면 이번 사태의 공식적인 종결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WKBL은 그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WKBL은 불법적인 일을 방조 혹은 동의했다. 법적 잘잘못을 떠나 최소한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선수와 에이전트, 구단에 철퇴를 내려놓고 정작 자신들은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신 총재는 "다음주에 재정위원회를 열어서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겠다"라고 했다. 두루뭉술한 답변이다. WKBL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코멘트다.
여자농구판이 뒤집어졌음에도 신 총재와 6개구단 단장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초까지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매년 진행했다. 이번에도 계획이 미리 잡혔다. 하지만, 취소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감독들과 사무국장들이 외국선수 정보수집을 위해 WNBA를 보러 간 상태였다. WKBL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안이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 결국 지난달 22일 이사회는 유명무실했다. WKBL은 검찰 발표(6월 15일)가 나온 뒤 20일만에 뒤늦게 대책과 페널티를 내놓았다. 그마저도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빠졌다. 이사회 직후 신 총재의 발언을 종합하면 현재 WKBL의 스탠스는 여러 상황을 검토, 내부적으로 책임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나은행 뒤에 숨지 마라
5일 이사회 직후 신 총재의 두루뭉술한 코멘트와는 달리 하나은행 조성남 단장은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차분하게 답변했다. 이미 자체적으로 확실하게 책임질 준비가 됐기 때문에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 하나은행은 이사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장승철 구단주, 박종천 감독의 사임을 발표했다. WKBL보다 한 발 빨랐다.
애당초 농구계에선 하나은행이 구단주가 물러나는 정도로 이번 사태를 정리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조 단장은 자신은 물론 한종훈 사무국장 이하 전직원, 지난 시즌 후 구단과 재계약을 맺은 박 감독까지 사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직접 밝혔다. 결국 직원들의 거취는 한 국장의 감봉처분으로 일단락됐다. 농구계는 하나은행의 대처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어떠한 논란과 잘못에 책임지는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지금 WKBL이 보여줘야 할 모습을 하나은행이 먼저 보여줬다. 물론 당장 신 총재 이하 수뇌부가 물러나면 이번 사태 뒷수습은 더욱 힘들어진다. 물러나는 것 그 자체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뼈를 깎는 반성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WKBL은 우물쭈물한다. 지금 WKBL은 하나은행 뒤에 어설프게 숨은 모양새다.
WKBL은 한국체육사에 길이 남을, 전대미문의 사기극을 방조했다. 신선우 총재 이하 전직원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단순히 죄송하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농구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즉시 보여줘야 한다.
[신선우 총재.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