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고동현 기자] 살면서 수 많은 선택의 시간이 온다. 만약 그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야구를 포기했더라면 지금 KBO리그에서 나오는 호수비 중 많은 장면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해민 이야기다.
박해민은 단순히 던지고 때리는 것이 야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삼성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60도루 고지를 밟는 등 빠른 발로 상대를 괴롭히며 수비에서는 양 팀 향방을 판가름하는 호수비를 '어렵지 않게' 해낸다.
그렇다고 타격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2014년 타율 .297, 2015년 타율 .293를 기록한 박해민은 올해 생애 첫 3할 타율에 도전하고 있다. 24일에는 김광현에 막히며 5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이 기록을 포함하더라도 8월 타율이 .353에 이를 정도로 쾌조의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다.
2015~2016시즌간 딱 1경기간 결장한 박해민이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신일고 시절, 한양대 시절 두 차례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한 것보다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부상이었다.
박해민은 2012년 신고선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1군은 물론이고 퓨처스리그에도 나오지 못했다.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
그는 대졸 선수로서 입단 이후 2년간 1군에 1경기 밖에 나서지 못해 조급함도 생겼을 것 같다는 물음에 "1군에 올라오지 못하는 조금함보다는 2군에 있을 때 계속 아팠다. 신고선수로 들어왔는데 아프다고 하면 구단이 안 좋아하니까 방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결국 '좋아서 부모님께 시켜달라고 해서 시작한' 야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박해민은 "첫 해(2012년) 아플 때는 '열심히 해서 내년부터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2년째 아플 때는 그만둬야하는 생각도 했다. 이 부분을 부모님께 말씀 드렸는데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을 때 해보라'고 하셨다. 부모님을 봐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 때문에 재활을 하다보니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부모님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했다.
여기서 부모님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박해민은 삼성 입단 이전까지 줄곧 서울에서만 살았다. 처음에는 대구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을 터. 이번에도 부모님이 있었다.
그는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은 선수는 없겠지만 아플 때도 많이 지지 해주시고 1군에 올라왔을 때는 밥 못 챙겨먹는다고 대구까지 내려오시니까 더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물론 박해민 자신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박해민은 없었겠지만 조력자 역할과 함께 동기부여까지 해준 부모님이 있기에 지금의 박해민이 더욱 빛나는 듯 하다.
[삼성 박해민. 사진=마이데일리DB]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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