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뷰티
[마이데일리 = 김지은 기자] ‘김영란법.’ 정확한 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쉽게 생각하자면 공직자 및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의 비리를 막고자 받을 수 있는 금품의 상한액을 설정한 법이다.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김영란법은 현재 시국을 어지럽게 만든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되기 전 국내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하지만 깨끗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목적에 비해 애매모호한 기준 때문에 시행초기 혼란을 예고했다.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해석과 적용에 따라 처벌대상이 달라져 아리송했기 때문. 사고파는 상품이 연관돼 있는 패션뷰티 업계의 경우 혼돈 그 자체였다. 이에 김영란법 시행 후 두달, 패션뷰티계 홍보인들의 삶을 물어봤다.
아래 인물은 그들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가상의 인물로 설정했고, 대화로 재구성했다.
워킹갈까: 뷰티 홍보 대행사 4년차. 야근 그만. 제발.
물아일체: 패션 홍보 대행사 5년차. 나는 일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
퇴사해요: 뷰티 홍보 대행사 2년차. 홍보인의 삶은 2016년까지, 일단 떠난다.
▲ ‘김영란법’ 어떻게 생각하나?
워킹갈까: 취지에 정말 공감한다. 홍보나 정보전달의 목적을 벗어난 접대는 불필요하고, 여태까지 관행처럼 이어온 것들도 사라져야 된다.
물아일체: 완전 공감해.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지. 김영란법을 통해서 ‘갑질’하는 기자가 사라지는 것도 기대하고 있어.
워킹갈까: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를 충분히 고려한지는 모르겠어.
물아일체: 맞아. 홍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형성된 공감을 따라올 수 없거든. 아무래도 친한 사람을 한번 더 보게 되잖아. 기자-홍보인의 관계를 떠나서도 그렇지 않아?
퇴사해요: 조금 박하다는 느낌은 있어.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엄청난 무언가를 한다기보단... 일반 직장인이 먹는 밥을 똑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는게 전부니까.
물아일체: 맞아. 대단하게 술접대를 하거나 골프접대를 하진 않으니까. 저녁에 하는 브랜드 파티가 있긴 하지만 따로 만나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어. 우리의 저녁은 소중하니까. 기자나 홍보인의 대다수가 여자라서 점심을 먹거나 오후에 커피를 마시는게 전부지.
워킹갈까: 그런데 식사하면서 친분을 쌓는 것도 꺼리게 됐어. 웬만하면 만나지말자는 기자들이 많아졌지. 어떤 기자들은 취재거리 있냐고 묻다가 그냥 거절하더라니깐?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서로 윈-윈(Win-Win)하는 좋은 기획을 만들기도 했었는 말이야. 다들 기준이 없으니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 ‘제발 우리만 아니길!!’이라고 바라면서.
퇴사해요: ‘제발 우리만 아니길’에 정말 ‘좋아요’ 1만번 누르고 싶어. 조금 큰 브랜드는 기자미팅 자체를 금지시켰어. 기사 안나와도 되니까 그냥 만나지 말래. 그런데 이건 웬만큼 알려진 브랜드의 이야기지. 이미 꽤 유명하니까 갖가지 마케팅 방법이 많잖아. 그런데 중소기업은... 암담하지.
▲ ‘김영란법’ 시행 후, 뭐가 달라졌나?
퇴사해요: 김영란법이 시행(9월 28일)된 다음날 프레스 행사를 준비했어(일동 눈물). 정말 울고 싶었지. 브랜드 입장에선 큰 행사라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와서 취소할 수도 없었거든. 갑자기 대다수의 기자들이 참석못한다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 결국 그동안 쏟았던 노력이 물거품이 됐어.
워킹갈까: 뷰티계는 제품 협찬이 아주 많잖아. 사용해봐야 기사 쓰기도 수월하니까. 기프트 역시 상당해. 그런데 제품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니 문제야. 출시를 앞둔 립스틱이 4만 5,000원 정도인데 포장까지 더하면 5만원이 넘어. 어떻게 할지 고민이야. 우스갯소리로 다XX에 가서 쥐잡듯이 뒤져보자고 하고 있어.
물아일체: 패션계는 그런 부분에선 괜찮은 편이야. 뷰티 브랜드처럼 제품 협찬을 많이 하진 않으니까. 협찬을 해도 반납율이 높아서 큰 변화가 없어. 개인적으로 리뷰용 제품은 조금 아까워. 신었던 신발을 다시 협찬할 수도 없고 그냥 재고 처리해. 내가 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퇴사해요: 나는 일이 더 많아졌어. 정확히 말하면 잡일? 하하. 협찬을 하고, 반납을 받을 때마다 문서를 남겨야하거든. 반납율? 확연히 높아졌지. 90%에 가까워. 나머지 10%는 촬영 때문에 손상된 제품들이야. 그런데 반납받아도 소용없어. 다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워킹갈까: 일이 더 많아졌다는데 공감해. 전에는 있는 제품을 쓸어 보내면 기자나 에디터들이 선택을 하고, 나머지 제품을 다시 보내주는 식이었잖아. 지금은 처리해야 될 문서가 많다보니 우리가 제품을 골라서 보내. 내가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기사를 쓰는 사람이 사용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해야 생동감 넘치는 기사가 나오는데... 어떤 부분에선 안타까워.
▲ ‘김영란 법’ 시행 후, 어려운 점은?
워킹갈까: 기사 수가 현저히 줄었어. 보도자료를 쓰는 것도 조심스럽단 이야기지. 보도자료를 일절 쓰지 않는 언론사도 많잖아. 이걸 브랜드 쪽에서 이해하면 좋겠지만 의아해 해서 문제야. ‘왜 전처럼 기사가 안나오냐’고 묻는데, 할말이 없지. 애초에 언론홍보의 길에 발을 들이면 안됐었나봐. 하하.
퇴사해요: 동감. 그러다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보도자료를 내보내기도 해. 민망할따름이야. 브랜드에서 현재 상황을 이해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야. 새로운 홍보방법을 요구하거든. 전처럼 해서는 안되니깐 새로운 방법을 짜내라는거지. 그래서 여러 기자들한테 물어보면 기자들도 난색을 표해.
물아일체: 그러다보니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만 흥했어. 기자용 마케팅비용이 다 그쪽으로 돌아가고 있거든. 기자가 가던 팸투어도 블로거랑 인플루언서를 보내고 있어. 어떤 블로거들은 기자보다 더 심해. ‘블로거지’란 말이 괜히 있겠어? 그래도 별 수 없지. 아직까진 별다른 홍보수단이 없으니까 감수해야지.
퇴사해요: 왕홍도 빼놓을 수 없어. 행사에 왕홍만 부르려는 브랜드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도 하고. 이제 하다하다 중국어까지 배워야하나봐. 거기다 중국매체까지 오면 총체적 난국. 말도 안통하니까 더 힘들어. 행사 끝나고 나면 혼이 빠져.
▲ ‘김영란 법’, 지속될까?
워킹갈까: 초반에 3개월봤어. 워낙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판례에 따라 다 변하겠거니 생각했지. 새로운 것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아직 뚜렷하게 처벌받은 사례가 없어서 여전히 아리송해. 하지만 서서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뀔 것 같아.
물아일체: 전이랑 똑같아. 초반에만 덜덜 떨었지 지금은 뭐가 달라진지도 모르겠어. 하던대로 열심히 홍보해야지.
퇴사해요: 이대로 지속되도 문제 없을 것 같아. 제품 협찬이 까다롭긴 하지만 지금은 전이랑 같거든. 미팅도 서서히 늘고 있어. 물론 식사미팅보다는 티(Tee) 미팅이 많아졌지. 할 수 있는 내에서 이것저것 하려고 해. 그런데 조금 쉬고 돌아올게(웃음).
[부정청탁. 사진 = 셔터스톡]
김지은 기자 kkell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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