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961년, 캐서린 존슨(타리지 P. 헨슨),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자넬 모네)은 나사로 출근하는 길에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도로시 본이 차를 정비하는 중에 백인 경찰이 나타난다. 흑인여성 세 명이 나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에 놀란 경찰은 나사까지 그들을 에스코트해준다.
이 오프닝신은 ‘히든 피겨스’ 이야기 전개를 알려준다. 고장난 차는 흑백분리정책으로 갈등에 휩싸이고, 소련과의 우주개발에 뒤쳐진 미국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이들이 차를 고치고 백인 경찰 차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것은 앞으로 소수자인 흑인 여성이 백인을 앞지를 수 있다는 선언이다.
‘히든 피겨스’는 인종차별 속에서도 오직 실력과 능력으로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에 큰 공을 세운 세 여성의 실화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마고 리 셰털리가 5년간의 취재와 인터뷰로 역사 속에 숨겨진 그들의 삶을 세상에 알렸고, 데오도르 멜피 감독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톤으로 세 여성의 삶을 스크린에 불러냈다.
인종차별을 다루는 영화에서 줄곧 다뤄지는 캐릭터는 흑인을 멸시하고 학대하고 괴롭히는 백인이다. 그러나 ‘히든 피겨스’에는 그러한 클리셰적인 인물이 없다. 멜피 감독은 백인들에게 내재화된 인종차별의 구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도로시 본을 관리자로 승진시키지 않는 미첼(커스틴 던스트)은 “당신들에게 악감정은 없어”라고 말한다. 미첼을 비롯한 백인들은 흑백차별이 당연하다는 그릇된 생각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최고의 수학자 캐서린 존슨이 가까운 화장실을 놔두고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가기 위해 먼 곳까지 뛰어 다녀오는 장면에선 잘못된 제도와 관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합리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멜피 감독은 세 여성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뤘다.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는 캐서린 존슨, 관리자 및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성장하는 도로시 본, 나사 최초의 흑인 엔지니어가 되는 메리 잭슨이 차별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수많은 백인들 앞에서 차별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캐서린 존슨, 후배직원들을 이끌고 IBM컴퓨터실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도로시 본, 백인 판사 앞에서 수업권을 얻어내는 메리 잭슨의 모습으로 강렬한 구두점을 찍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나사 랭글리 연구센터의 내부 구조부터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인 존 글렌의 우주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낸 점도 뛰어나다.
퍼렐 윌리엄스와 한스 짐머는 이들이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한계를 뛰어 넘을 때마다 경쾌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희망을 북돋는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타라지 P. 헨슨, 여유로움과 강인함을 겸비한 옥타비아 스펜서, 통통 튀는 이미지의 자넬 모네가 이뤄내는 연기 앙상블도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
세 여성의 헌신으로 인종과 성 차별은 조금씩 누그러 들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차별의 벽은 견고하다).‘숨겨진 인물들’이 아니라 ‘위대한 영웅들’이 꿈과 용기의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그들은 평등과 희망의 로켓을 쏘아 올렸다.
[사진 제공 = 20세기 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