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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왕이 된 남자'는 저를 변화시킨 작품이에요."
지난 4일 종영한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시청자들의 기대에 힘 입어 '왕이 된 남자'의 최종회 시청률은 10.9%(닐슨코리아,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라는 자체 최고 기록을 달성하며 웰메이드 사극의 진수를 자랑했다.
김희원 PD의 감각 덕에 탄생한 풍부한 미장센과 매회 시청자들을 전율케한 엔딩은 극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올바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궁궐 내의 치열한 암투 역시 쫄깃하게 흥미를 자아낸 가운데, 이헌/하선(여진구)과 중전 소운(이세영)의 애틋한 사랑까지 더해져 마지막까지 진한 여운을 안겼다.
여진구(22)에게는 보다 더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 하다. 그는 폭군 이헌, 광대 하선을 연기했다. 배우로서 한번쯤 욕심을 낼만한 1인 2역인데다, 자신의 강점으로 꼽히는 사극 연기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원작 속 이병헌이 연기한 광해와는 또 다른 에너지를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도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아역 이미지를 한 겹 더 벗겨내고 성인 연기자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호평까지 거머쥐었다. 그래서인지, 여진구는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인생 작품'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날 여진구는 "두 작품을 끝낸 기분이다. 배운 것은 그 이상이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스태프 분들 모두가 큰 열정을 가지고 해주셨다. 현장 분위기가 이렇게 좋았던 것은 처음이다. 덕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이에, 순간에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다. 앞으로 연기할 때에 이 작품을 보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뜻 깊었다"라며 들뜬 소회를 밝혔다.
다만 연기력으로는 정평이 난 여진구도 1인 2역 연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실체 없이 상상으로 두 명의 자신을 떠올려야했고, 소운 역할을 맡은 이세영을 향한 애정 표현에도 차이를 둬야 했다. 하지만 여진구는 "그게 확실히 도움이 됐다. 액션과 리액션을 한꺼번에 해야 하니 배움이 더 컸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헌에 있어서는 가장 염려스러웠던 게 눈빛 연기에요. 소운을 바라보는 두 남자가 정말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렇다고 이헌이 소운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차이를 둘지 고민했어요. 하선과 소운의 애틋한 느낌은 레퍼런스도 꽤 있었기 때문에 참고할 수 있었는데 이헌은 처음 해보는 사랑이었어요. 집착, 애증이 얽혀 있어요. 현장에서 헤매면서 연기를 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노력 덕에 이헌 캐릭터가 매력 있게 그려졌어요. 제 생각보다 훨씬 풍성해졌어요."
이규 역의 김상경과 이세영이 여진구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그는 "(이)세영 누나와 호흡은 정말 좋았다. 현장에서 저를 '왕오빠'라고 불러줬다. 서로 피곤한 상태에서도 해맑게 장난도 많이 쳤다. 사실 스타일이 다르면 힘들 수도 있는데 이번처럼 현장에서 즐겁게 촬영한 적은 처음이다. 현장 분위기도 너무나 유쾌했다. 큰 힘이 많이 됐다. 세영 누나와 (김)상경 선배님이 분위기메이커였다. 사실 성격들이 너무 좋으셨다"라고 말했다.
"김상경 선배님은 정말 이규처럼 제게 선생님이셨어요. 농담으로 '교수님'이라고 할 정도로 의지했죠. 이규가 죽고 나서 현장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졌어요. 선배님과 촬영할 때면 더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힘들거나 지칠 타이밍에 계속 '우리 잘하고 있어'라면서 멋있는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셨어요."
무엇보다 여진구는 인터뷰 내내 스태프들과 김희원 PD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특히 김희원 PD의 굳건한 믿음과 지지는 여진구가 중심을 잡는 데에 일등공신이었다. '인생작'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 역시 그들과 함께 한 현장에서 비롯됐고, 이는 차기작인 '호텔 델루나' 출연 결심으로까지 영향을 미쳤다.
여진구는 "바로 차기작을 정한 것도, 이 드라마 영향이 되게 컸다. 감독님 스타일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맞춰주시는 스타일이었다. 저에게 맡겨주시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제 연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변신에 있어서 겁도 조금 나지만, 소심하게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도 계속해서 저를 테스트하고 싶고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제가 모든 걸 잘해서 인생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모든 스태프들과도 호흡이 좋아야 해요. (김)상경 선배님이 매일 저에게 '이건 너의 인생작이 될 거야'라고 하셨어요. 그 때는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은 했었지만 쉽게 감은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내 작품을 시청자 모드로 볼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정하게 됐죠. 앞으로는 이 작품과 같은 현장과 호흡을 기대하면서 연기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새드무비'(2005)로 데뷔한 여진구는 어린 나이에도 '사랑하고 싶다'(2006), '일지매'(2006), '타짜'(2006), '자이언트'(2010)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해를 품은 달'(2012)은 그를 지켜봐왔던 대중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한 인생 작품이 됐다. 누나 팬들로부터 '진구 오빠'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불린 순간도 이 때부터다. 이후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로 최연소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그는 쉬지 않고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열연을 펼쳤다. 그렇게 달려오고 나니 어느덧, 데뷔 14년차다.
"연기를 하면서 지친 적은 없어요. 연기란 게 그런 거 같아요. 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배우고 있어요. 늘 부족함을 느끼니까 질릴 수가 없어요. 또 배우는 계속해서 표현을 하는 일이잖아요. 답답하거나 응어리진 것들을 연기로 풀어낼 수도 있어요. 이번에도 이헌이 무언가를 부술 때 '오 다음 씬에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요.(웃음) 연기를 도구로 삼아서 청년 여진구가 숨도 쉬어요. 행운이죠."
여러 사극 작품에서 두드러진 덕에 '사극 장인'이라는 극찬을 받아낸 여진구는 "23살에 한 장르로 그렇게 평가 받는 게 어려운 것 아닌가. 부담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다. 사극으로 호평을 받는 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도 당연히 있다. 제가 꿈꾸는 건, 장르에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배우다. 어떤 분들은 왜 그런 도전을 하냐고 하신다. 잘할 수 있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저는 벌써부터 제가 잘하는 연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성장을 하고 싶다. 아직은 욕심을 내도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베테랑 배우 아닌, 인간 여진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다를 것 없다. 그냥 이렇게 산다. 배우 여진구를 잘 해내고 싶은 생각에 열심히 산다. 그냥 여진구의 삶도 찾아가야겠지만.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연기인 것 같아서 열심히 하는 이 모든 게 여진구 자체가 아닌가 싶다"라면서 "물론, 저 친구는 많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 많다. 놀고 술도 마신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에 주량을 묻자 "저 의외로 술은 잘 못 마신다. 많이 마시면 한 병 반 정도 마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분위기를 좋아한다. 짧게 만나서 술 빨리 먹고 헤어지는 것보다는 길게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맛있는 술 먹어보는 걸 좋아한다. 굳이 주량을 체크해가면서 먹지는 않는다. 스스로 조절하면서 먹는다. 주종을 가리지는 않는다"라고 전했다.
여진구는 차기작을 tvN 새 드라마 '호텔 델루나'로 정했다. 히트작메이커 홍자매가 집필하며, 호흡을 맞추는 파트너는 아이유(이지은)다. 그는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던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할 것이라며 자신했다. 그러나 아직은, '인생작'인 '왕이 된 남자'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 여진구다.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라는 배우를 아껴주시고 받아들여준 현장이었고, 제가 스스로를 찾아서 변화시켜준 작품이기 때문에 잊기가 힘들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의존하는 부분이 컸고,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늘 달고 살면서 연기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확신을 갖고 연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저만의 고집이 생기게 해준 작품이에요."
[사진 = JANUS ENT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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