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01년 정규시즌을 제패한 팀은 삼성이었다. 해태(현 KIA)에서 'V9'을 이룬 '명장' 김응용 감독을 모셔와 페넌트레이스를 정복했다.
삼성의 목표는 오직 단 하나.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했지만 한국시리즈만 가면 고개를 숙였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마운드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삼성은 외국인투수 살로몬 토레스가 2패 평균자책점 20.25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발비노 갈베스를 전격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갈베스가 누구인가.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선수가 아닌가. 1996년 16승을 거두며 요미우리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갈베스는 2000년까지 5시즌 동안 46승 43패 평균자책점 3.31을 남겼다. 기량 만큼은 확실한 선수였다.
문제는 그의 인성이었다. 요미우리 시절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상대 선수에게 주먹을 가격하는 것은 물론 볼 판정에 불만을 품고 구심에게 위협구를 던지는 돌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갈베스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갈베스는 140km 후반대 패스트볼과 위력적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을 앞세워 한국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했다. 무엇보다 그의 장점은 바로 내구성. 언제든지 완투가 가능한 선수였다. 갈베스가 15경기 만에 116⅔이닝을 던져 완투 5회, 완봉 2회, 10승 4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하면서 삼성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15년 한화에 입단한 에스밀 로저스가 열풍을 일으키기 전에 '갈베스 열풍'이 있었다.
그런데 갈베스는 8월말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국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7번이나 입국 약속을 어기면서 삼성과 마찰을 빚었다. 45일이 지나서야 다시 한국에 들어왔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던 그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은 갈베스에게 1차전 선발투수라는 중책을 맡겼으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갈베스는 4회초 타이론 우즈에게 우월 솔로홈런을 허용하고 5회초 8~9번타자인 홍원기에 몸에 맞는 볼, 전상렬에 중전 안타를 맞자 삼성은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갈베스가 내보낸 주자들은 모두 득점해 4이닝 5피안타 3실점이라는 씁쓸한 결과를 남기고 말았다.
삼성은 우여곡절 끝에 1차전 승리를 잡았지만 갈베스가 기대 이하의 피칭을 보이면서 이미 꼬이고 있었다. 두산 타선의 파상공세를 견디지 못한 삼성 마운드는 2~3차전을 연달아 패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삼성은 반드시 잡아야 했던 4차전에서 다시 한번 갈베스를 내세웠으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삼성 타선이 2회초 공격에서만 대거 8득점을 올렸음에도 갈베스는 1회말 우즈에 우월 2점홈런을 맞는 등 2회까지 3실점으로 불안한 출발을 한 뒤 3회말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씁쓸하게 강판을 당해야 했다. 2이닝 6피안타 4사사구 7실점이라는 처참한 결과였다.
삼성은 3회말에만 12실점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 실점이라는 굴욕을 맛봤고 11-18로 패해 1승 3패로 밀리면서 끝내 2승 4패로 또 한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지만 갈베스가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면 한국시리즈의 결과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키움이 최근 제이크 브리검과 결별하기로 합의했다. 브리검은 지난 7월 12일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가뜩이나 키움은 내부 징계로 인해 한현희, 안우진, 송우현 등 주축 선수들이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선수 1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브리검이 미국 출국 후 소식을 업데이트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키움과 브리검은 결별을 합의할 수 있었다. 브리검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아내가 신장 수술을 받게 됐고 양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자택에 곰팡이가 생겨 바닥이 뚫리기까지 했다.
설령 브리검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멘탈을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매일 훈련을 하고 불펜 피칭과 시뮬레이션 게임도 진행했지만 그렇다고 실전 감각을 유지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갈베스처럼 억지춘향으로 데려오느니 차라리 합류하지 않는 것이 키움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2001년 삼성에서 뛸 당시 발비노 갈베스.(첫 번째 사진) 키움 시절의 제이크 브리검.(두 번째 사진)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마이데일리 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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