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첫눈에 딱 계성대군이 들어왔어요. '계성대군 하고 싶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라고 했죠.
차가운 공기와 함께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유선호가 들어섰다. 미지근한 물을 찾는 공손한 목소리는 살짝 잠겨있었다. 생각보다 훤칠한 키는 그가 어느덧 성인임을 다시 깨닫게 했다. 그러나 소년처럼 말갛게 미소 지을 줄 아는 배우, 유선호를 만났다.
지난 4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슈룹'(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은 자식들을 위해 기품 따윈 버리고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 임화령(김혜수)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
극 중 유선호는 화령의 넷째 아들 계성대군 역을 맡았다. 그는 엄마에게 가장 살가운 아들이면서, 사고뭉치 대군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아들. 그러나 동시에 폐전각에 여인의 저고리를 걸어두고 자신의 입술에 연지를 바른다. 여장이라는 은밀한 비밀을 감추고 있기 때문.
유선호는 가장 먼저 "당연히 내가 계성대군을 느끼고 연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강조했다. 그러나 여장을 들키는 2회 엔딩신을 위해 외적인 모습 역시 신경 써야 했다. 머리를 기르고, 피부 화장을 하며 조선시대에는 화장을 어떻게 했을지 공부도 했다. 몸이 커 보인다는 느낌에 체지방보다는 근육을 빼며 노력했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무려 4~5kg을 감량했다.
계성대군을 위한 또 다른 노력을 묻자 유선호는 "계성대군은 정체성을 궁에서 숨겨야 했다. 이게 알려지면 목숨도 위험해지는 상황이라서.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말 그대로 숨기는 거다. 의도한 디테일이 있다. 그런 디테일을 찾아보시면 꽤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뿌듯하게 덧붙였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도 신경 쓸 만큼 유선호는 계성대군에 열성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오디션을 볼 때부터 유선호는 오직 계성대군뿐이었다. 정체성도 이야기의 흐름도 몰랐던, 발췌 대본뿐이던 그때부터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이 끝나는 날까지.
"여태 했던 작품들이 캐릭터성이 다 짙어서 사실 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특히 조금 더 어려웠어요. 그래도 혜수 선배님이랑 감독님이 칭찬해주시고 알아봐 주실 때 정말 뿌듯했어요. 아쉬운 점이요? 사실 모든 배우들이 느끼실 텐데 본인은 모든 게 아쉬워요. 저도 항상 아쉬워하면서 집에 가거든요. '뭐가 아쉬워요?' 물어보면 모든 게 아쉽다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런 계성대군에게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예술가 기질을 가진 초절정 꽃미남. 서예와 그림, 가야금에 능한, 말도 잘 듣고 학문도 곧잘 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번거로운 건 싫어하는 인물.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는 것은 그가 김혜수의 아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해 유선호는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다. 여태까지 했던 모든 '영광입니다'라는 말이 모두 다 진심이었지만 제일 큰 진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선배님이랑 같이 연기한다는 게… 너무나도 큰 선배님이셔서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며 살짝 들뜬 기색을 보였다.
함께 연기했기에 유선호는 김혜수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혜수는 조언을 건네면서도 항상 의견을 물었다. 덕분에 유선호는 자신과 김혜수의 생각이 함께 공유되며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혜수의 조언은 스스로의 장점을 확실히 알게 해 줬고, 부족한 점을 되새김질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김혜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을 건넸는지 묻자 뜻밖에도 유선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조언을 많이 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많이 말해주는 것이 김혜수라고. 유선호는 눈물로 가득했던 김혜수와의 마지막 촬영을 회상했다.
"계성대군이 떠나는 때였는데. 선배님도 엄청 많이 우시고 저도 엄청 울었어요. '컷'했는데도 서로 울고 있었고. 그때 선배님이 저한테 '선호 너는 연기할 때 거짓말 안 해서 너무 좋아. 항상 진실되게 해 줘서 좋아'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전 정말 앞으로 연기하면서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그 말을 떠올리면서 연기할 것 같아요."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면서도 유선호는 롤모델로 김혜수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김혜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는 물론 내적으로도 멋있는 사람. 배우들에게 하는 말 하나하나, 촬영장에서의 행동 하나하나. 유선호가 본 김혜수는 배울 게 많은 인물이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직 멀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김혜수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촬영장은 하루하루 행복했다. 유선호는 "대부분 혜수 선배님 아니면 왕자들이랑 찍었다. 그냥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았다. 같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너무 큰 힘이 됐고 에너지가 됐다. 그냥 너무너무 좋았다"며 말했다.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왕자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당연히 어색했는데 준비과정도 하면 한 1년을 함께 했다. 너무 친해졌다. 장난도 많이 치고 농담도 하고 서로 생각도 공유하고 밥도 먹고 운동도 가고. 되게 재밌게 촬영했다"며 "방금도 상민이 형이랑 연락했다. 형도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일단 조만간 만나기로 한 모임이 있는데 나는 개인 사정으로 못 가게 됐고 나중에 또 보기로 정해놓은 날짜가 있다. 중전마마와 대군들의"라고 소년처럼 웃었다.
'슈룹'은 유선호에게 첫 사극이었다. 계성대군을 연기한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겨달라 부탁하자 유선호는 "50점"이라며 단호히 답했다. 그는 "앞으로 더 좋아질 거니까. 앞으로 나는 분명히 더 잘 해낼 거니까 지금은 그런 점수를 주고 싶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선호의 마음가짐이 빛났다.
그리고 유선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KBS 2TV '1박 2일'의 막내로 합류하는 것. 지난달 25일 첫 촬영도 마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너무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다. 너무너무 기쁘고 설레는 일"이라며 "솔직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들 너무 반겨주시고 에뻐해 주셔서 너무 재밌게 하고 왔다. 다음 촬영이 기다려진다"라고 이야기했다.
유선호 맏형인 배우 연정훈과는 무려 24살, 가장 어린 나인우와도 8살 차이가 나는 막내 중의 막내로 합류하게 됐다. 기존 팬들의 우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유선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가로저었다. 유선호의 걱정 중에 나이는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서 마음을 못 나누는 것도 아니고 공감을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전혀 걱정되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까 더 걱정이 안 되고 잘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형들 전부 하나하나 다 너무 각자의 다른 매력들이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어떻게 할지도 궁금하고 기대가 돼요."
예상치 못한 강단 있는 대답에서 이제는 '병아리 연습생'을 떠올리기엔 훌쩍 자란 것이 느껴졌다. 2002년생. 올해로 벌써 스무 살이지만 어느덧 데뷔 6년 차이기도 했다. 여기에 182cm의 큰 키, 굵어진 선까지.
어느새 어른이 된 유선호에게 데뷔 초와 달라진 점을 묻자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느꼈을 때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직 정말 많이 부족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나름 요만큼의 노하우나 기준도 생겼다. 나중에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올해 이룬 소소한 목표로 면허 취득을 말하자 또 한 번 유선호의 성장이 체감됐다. 올해 2종 보통 면허를 취득해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운전도 해봤다고. 올해 해낸 가장 큰 일로 '슈룹'을 잘 마무리한 것을 꼽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슈룹'을 일단 1년 가까이했잖아요. 처음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게 12월 14일일 거예요. 저번 주에 촬영이 끝났으니까 한 1년이 됐는데 스물한 살을 오롯이 '슈룹'에만 보냈거든요. 나중에 '슈룹'이 어떻게 기억에 남을지 생각해보면, 그냥 제 스물한 살로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정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닐만한 저의 기록이요."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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