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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미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A씨의 아내는 2019년 10월 다니던 제조업체에서 퇴사했다. "아내가 같은 회사 팀장 B씨와 내연관계"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남편 때문이었다. A씨는 회사를 무단 침입해 B씨를 폭행·협박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A씨 아내는 퇴사 직전 상사와의 면담에서 "남편이 회사를 해코지할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할 만큼 A씨의 의처증은 심각했다.
불안한 예감은 끔찍한 비극으로 번졌다.
A씨가 2020년 3월 경기 안산에서 퇴근하던 B씨를 살해한 것이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는 2021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법원은 "살인은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면서도, A씨가 살해 당시 망상장애와 조현병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였던 점을 참작했다.
살해당한 B씨의 아내 C씨는 근로복지공단(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남편의 죽음은 산업재해이므로 공단이 유족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공단이 이를 거절하자 C씨는 법원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C씨 측은 법정에서 "A씨의 살해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 내재된 위험이 현실화한 것"이라며 "남편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퇴근하다 살해를 당했으니 '출·퇴근 재해'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공단 측은 "직원 가족(A씨)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돌발행동까지 직장 내 인간관계에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B씨의 사망은 통상적인 퇴근 과정에서 발생하리라고 예측하기 어려워 산재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 남편의 죽음은 산재인가... 판단 갈린 하급심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C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살인의 단초가 '업무'라고 봤다. A씨가 아내와 B씨가 면담하거나 퇴근 후 업무지시를 받는 모습을 보고 내연관계를 의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①A씨 아내가 남편의 의처증이 회사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퇴사했고 ②퇴사 시점으로부터 불과 4개월 만에 살인이 발생한 점까지 더해 "직장 안의 인간관계에 내재된 위험이 현실화된 살인이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적인 관계에서 벌어진 살인"이라는 공단 측 주장에 대해선 "A씨 아내와 B씨가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 접촉을 하지 않았고 A씨도 B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망상장애 병력에 대해서도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사망과 업무 사이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4-3부(부장 정선재 권기훈 한규현)는 지난달 5일 1심을 깨고 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살인 자체가 A씨의 망상장애로 인한 보복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A씨 아내와 B씨 간 업무 관련성이 끈끈하지 않았다고 봤다. "A씨 아내와 B씨는 근무장소가 달라 수시로 대면하지 않았고 B씨가 계속적으로 업무를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설령 B씨가 A씨 아내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대면 업무가 이뤄졌더라도 그 자체로 살인이라는 재해를 입을 위험성이 내재돼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재판부는 퇴사 이후 두 사람 관계가 더욱 멀어진 점도 주목했다. ①B씨는 A씨 아내에게 퇴사 이후 연락하지 않았고 ②살인도 퇴사로부터 4개월이 지난 뒤에 발생한 점을 보면 업무 연관성이 더욱 떨어진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출·퇴근 재해"라는 C씨 측 주장에 대해선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C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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