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강제규 감독은 대학교 시절 휴 허드슨 감독의 '불의 전차'(1981)를 보고 달리기와 마라톤의 매력에 빠졌다. 순전히 인간의 몸으로 전진하는 순수한 스포츠에 매료됐다. 그는 훗날 ‘마이웨이’(2011)에서 마라톤을 소재로 활용했다. 준식(장동건)은 1등으로 들어왔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2위로 들어온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조)에게 금메달을 뺏긴다. 언제나 마라톤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그에게 ‘1947 보스톤’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서윤복(임시완) 선수 개인에만 초점이 맞춰진 각본이었다면 안했을 것이다. 마라톤 팀의 감독으로 참여한 손기정(하정우), 36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후배 서윤복을 도와주기 위해 참가한 남승룡(배성우) 세 명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1년 ‘불의 전차’부터 시작하면 마라톤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되기까지 무려 42년이 걸린 셈이다. ‘1947 보스톤’은 기획에서 개봉까지 5년이 걸렸다. 그 자체로 마라톤 레이스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고, 배성우의 음주운전 사건까지 터졌다. 42.195km를 달려야하는 마라토너처럼 그도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고 했던가. 개봉이 지연되는 덕분에 2년 동안 후반작업에 공을 들였다. 어떤 감독이든 욕심은 끝이 없다. 후반작업은 대부분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2년의 시간을 얻은 그는 편집, 사운드, 음악 등을 디테일하게 챙겼다. 베테랑 감독은 실화의 감동에 누가 될까봐 작은 부분까지 세공력을 발휘했다.
충무로에 ‘영화산업’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로 작용한 ‘쉬리’(1999), ‘실미도’에 이어 두 번째 천만영화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공통점은 분단의 아픔, 더 넓게 보면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다. ‘1947 보스톤’ 역시 1945년 해방 이후 남북이 갈라져 미 군정 치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1947년 당시의 아픔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그에게 현대사는 인물들의 극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밑그림에 불과하다. 그는 언제나 굴곡진 역사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사랑, 우정, 우애, 신뢰, 믿음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1947 보스톤’ 역시 미 군정 치하에서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유니폼에 성조기 대신 태극기를 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 마라토너의 사연을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국뽕’과 ‘신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다. 강제규 감독은 마라토너처럼 직진한다. 마라토너가 오직 결승 라인을 바라보고 달리듯, 그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연출로 세간의 편견을 떨쳐낸다. 눈물을 짜내거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오직 1947년 실제 보스톤 마라톤에서 가쁜 숨으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서윤복의 레이스에 집중한다. 스포츠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카타르시스가 극 후반부에 휘몰아친다. 그는 ‘불의 전차’에서 느꼈던 레이스의 감흥을 ‘1947 보스톤’의 마지막 달리기에 쏟아부었다.
스포츠 실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 결승선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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