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오후 2시, 어린이집 선생님 알림장이 휴대폰 앱으로 오는 시각이다. 아이 사진 한 장과 함께 아이가 일과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려 준다.
알림장을 확인하기 전에 유독 긴장되는 날이 있다. 바로 어린이집 행사 날이다. 아이가 이제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지만 한 달에 한 번 행사가 있을 때는 여전히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물놀이 행사가 있었다. 작년과 올해 여름에 아이를 데리고 물놀이터나 풀장에 가 보았지만 아이는 그것을 즐기지 않았다. 목욕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인 듯 반응했다.
담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에게 익숙한 물놀이 용품 몇 가지를 챙겨서 보냈다. 즐기지는 못해도 내내 울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행사 당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보면서도 마음은 온통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괜히 휴대폰을 자주 만졌다.
드디어 알림장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얼른 사진부터 보았다. 사진 속 아이는 옷이 홀딱 젖은 채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집에서 챙겨 간 물총을 든 채로.
남의 아이였다면 그저 귀여울 텐데, 옷이 젖어서 우는 게 분명한 아이 모습에 귀여움보다 안쓰러움과 속상함이 더 컸다. 예상대로 아이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물총놀이에 옷이 젖자 크게 울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아이를 씻기며 어린이집에 보냈던 물놀이용품을 정리했다. 아이가 그 중 물총을 잡더니 물총을 쏘아보려고 이리저리 애를 썼다. 조준하는 데 서툴러 갑자기 내게 물줄기가 날아왔다. 옷이 젖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엄마 옷이 젖잖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물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옷이 젖는 걸 싫어하는 사람.
어릴 적부터 학교나 교회에서 물놀이를 할 때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아무렇지도 않게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 수업을 받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모든 게 불편했다. 나는 바다 햇볕과 파도를 즐기는 친구들을 그늘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중학생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겉으로는 즐거운 척했지만 물에 젖으면 흐트러지는 머리와 몸에 달라붙은 옷이 신경 쓰였다. 구명조끼를 입고도 물에서 허우적대다가 나이가 한참 어린 남동생에게 구조되듯이 끌려 나왔던 사건은 아직도 민망한 기억이다.
돌아보면 어릴 적 우리 집은 여름마다 계곡이나 바다로 놀러 다닐 만한 삶의 여유가 없었다. 수영도 못하고 물놀이 경험도 적었기에 두려움과 불편함이 컸다. 대성통곡하고 있는 아이 사진을 보면서 실은 그렇게 울고 싶었던 어린 날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내게도 단 한 번, 가족 모두가 바다에 여행을 갔던 추억이 있어 문득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곤 한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과 해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물결이 보고 싶어지곤 한다.
아이가 물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경험 문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지닌 높은 불안도와 예민함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다. 그래도 아이가 커서 언젠가 문득 엄마와 물놀이를 애틋하게 떠올린다면 그러면 되는 게 아닐까.
참방거리는 물놀이를 하고 싶다. 신발도 옷도 젖어 가며. 아이와 함께라면 물놀이가 재미있을 것만 같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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