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정년이'는 스태프들도 그렇게 여자가 많았어요. 연출가도 감독님부터 여자였고, 그 밑에 연출부도 다 여자였죠. 오래 일하다 보니 이렇게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보게 되는구나, 반가웠죠."
지난 2017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여성 배우로서의 삶을 고찰했던 문소리가 약 8년 만에 '정년이'를 만났다. 지난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로, 여성 중심 서사를 다룬 것은 물론 주연까지 모두 여성으로 이뤄지며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8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배우의 입지에 대한 소신을 밝혔던 만큼, 이번 작품은 그에게 조금 더 남다를 터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문소리는 '정년이'를 통해 압도적인 흡입력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10일 방송된 10화에서는 딸 윤정년의 길을 인정하며 '추월만정'을 불렀고, 시청률은 자체 최고 기록인 14.1%로 직행했다.
1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씨제스 스튜디오 사옥에서 취재진을 만난 문소리는 "하루에 3번씩만 연습해도 1000번이다. 아마 '추월만정'은 천 번 넘게 불렀을 거다. 처음 ('추월만정'을) 시작한 것이 작년 3~4월 쯤이었는데, 마지막 녹음을 올해 4월에 했다. 그러니 레슨만 1년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만 지면 '추월~'하고 노래를 부른 탓에 남편이 깜짝깜짝 놀랐다"며 '추월만정'의 준비 과정을 설명하는 문소리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담담했다. 앞서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을 위해 4개월 간의 일어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아가씨' 때는 저만 일본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일어를 해도 한국사람인데, 전 일본 귀족이었죠. 그래서 남들만큼 해선 안됐고,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부터 다시 공부했어요. 그런데 그때도 '내가 이 한 신 때문에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 보단 과정이 너무 즐겁단 생각 뿐이었어요. 이번 작품도 그랬죠. 또 어렸을 때 제게 판소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그 분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요. 꼭 하늘에서 뭐라고 하실 것 같았어요. '이눔아,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는데 안하면 되겄냐!' 이렇게요. 덕분에 오랜만에 판소리도 듣고, 배우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죠."
사력을 다했던 만큼, 감정선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특별 출연'임에도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나길 바랬다던 그다.
"드라마도 좋지만, 어떤 예술가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이 꺾여서 그 인생이 버려지고 이름까지 바꾸고 다른 삶을 살게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 다음 인생은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본인의 삶은 죽은 거죠. 그러니까 그런 트라우마가 얼마나 클지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보통의 엄마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 더 강했으면 좋겠다, 뭔가 내면의 더 강한 면들이 비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문소리는 이 모든 과정을 즐거움으로 기억했다.
"타고난 소리 천재라니, 부담스러웠죠. 그렇지만 어려운 걸 시켜주셔서 고마웠어요. 믿고 맡겨주시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요. 어떤 챌린지가 있는 역할들이 배우에게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극도 되고 흥분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도전하는 지점들이 있는 역을 주시면 기쁘긴 하죠. 사실 저한테는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엔딩 크레딧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배우로서 그 작품이 더 재밌고 빛나길 바랄 뿐이죠. 배우로서 재밌는 도전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즐기는 자를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어느덧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문소리는 "영원히 할 테니까 세지 마세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에 데뷔해서 어떻게 보면 호황기의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그 뒤로 해마다 어렵다 어렵다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래도 이렇게 제가 할 역이 있고 재밌게 작업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좋은 동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내년에도 특별하게든 안 특별하게든 인사를 드릴게요. 무대든 스크린이든 채널이든, 어디서든요!"
이예주 기자 yeju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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