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20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일 먼저 느낀 건, 도로에 오토바이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20년 전에는 정말 도로가 미어터지도록 오토바이 행렬이 이어졌다. 이방인 눈에는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동안 하노이에 다시 갈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택시 요금 바가지 문제가 컸다. 이번에는 전세 버스를 이용하는 단체여행이었으므로 택시를 탈 일이 없어 사정을 모르겠지만, 20년 전에는 하노이 택시가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시는 하노이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우리 가족이 후에에서 하노이로 이동해 이용한 첫 택시부터 말썽이었다. 택시기사에게 공항에서 시내까지 요금을 물으니, “작은 차(승용차형)는 10달러(1만4200원) 고, 큰 차(승합차형)는 12달러”라고 했다. 우리가 베트남 사정을 모르는 줄 알고 속이려는 게 분명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의 크기에 상관없이 10달러로 요금이 정해져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앞서 호치민으로 들어가 나짱(나트랑)과 후에를 거치며 여행하는 동안 베트남은 차 크기에 상관없이 택시 요금이 같다는 경험도 이미 한 터였다.
어쨌든 우리는 작은 차를 타기로 하고, 기사로부터 요금이 10달러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받았다.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딴소리 안 하겠지.’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비웃듯이 그는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천연덕스럽게 12달러를 달라고 했다.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무슨 소리냐. 당신이 큰 차는 12달러요, 작은 차는 10달러라기에 우리는 작은 차를 탔다. 2달러를 더 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아마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더 받아야 한다는 말 같았다)을 하면서, 2달러를 더 달라고 끈질기게 졸랐다. 결국 2달러를 뜯기고 나니,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산뜻하지 못한 하노이 택시 기사와 만남은 투어를 모두 마치고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하노이에서 열 번 정도 택시를 탔는데 불쾌하지 않은 적이 두어 번밖에 없었다.
“OO를 아느냐?”고 물으니 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 놓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끝내 모르겠다고 발뺌하는 기사도 있었고, 먼 거리라 미터 요금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해 요구하는 금액을 주기로 하고 타고 보니 바로 코앞이기도 했다.
미터기를 조작해도 너무 심하게 하여 몇 미터 움직일 때마다 숫자가 바뀌는 무시무시한 택시도 탔고, 갈 때 3만4000동(2000원) 나왔는데 올 때는 8만6000동(5000원)이 나올 정도로 일부러 빙빙 돌아다니는 뻔뻔한 택시도 탔다.
나중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택시 기사 때문에 불쾌감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노이 여행을 마쳤으니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하는 건 정한 이치. 택시 타기가 겁날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니 이번엔 한 술 더 떠 작은 차는 15달러(2만2000원)요, 큰 차는 20달러(2만9000원)란다. “공항까지 10달러 아니냐”고 물으니, “그건 올 때 얘기고, 갈 때는 더 줘야 한다”고 해 우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택시는 타야 하고, 그가 불러주지 않으면 길거리 택시 기사와 흥정해야 하는데 그건 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달러(7200원)는 택시를 불러준 호텔 직원에게 수고비 주는 셈 치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탄 택시였건만, 기사는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고는 고속도로 통행료로 2만동을 따로 달라고 요구했다. 더 이상 실랑이하는 것도 지쳐 그가 달라는 대로 주고 나서 앞을 보니, 다른 외국인이 똑같은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쳐서 그냥 주고 만 것과는 달리, 그 외국인은 끝까지 버티다 가방을 끌고 공항 안으로 휙 들어가는 것이었다.
‘저러는 수도 있구나. 우리도 그럴 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계산이 끝났으니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하노이를 이번에 다시 가서 보니, 예전보다는 확실히 도시도 깔끔해진 것 같고, 도로 위 질서도 좀 잡힌 것 같아 보기에 좋았다. 하긴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이니, 그 정도 변화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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