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어린이집에 늦게 등원했다. 문 앞에서 호출하니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 나온다. 같은 반 친구다.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며 “어서 와” 인사하고 손을 꼭 잡는다.
작년에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때는 또래가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했다. 지금 이렇게 친구와 손잡고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 아렸다. 그러나 돌아서며 자꾸 한숨도 나왔다. 그 이유는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을 옮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을 때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와 출퇴근 시간은 그저 피로도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육아를 병행하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시각, 퇴근과 하원 시각이 문제가 된다. 어린이집 운영 시간에 비해 나는 일찍 출근해야 하고 남편 직장은 너무 멀었다. 출퇴근 시각을 바꿀 수는 없으니 거리라도 좁혀야 한다. 또 만에 하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 도와줄 사람도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
여러모로 우리 직장과 시댁 둘 다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막상 몇 달째 실질적인 이사를 준비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어린이집 때문이다. 이사를 하면서 어린이집도 옮겨야 하는데 기질이 까다롭고 발달이 느린 아이가 새로운 곳에서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통상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보통 2주에서 1달 정도로 잡는다. 내 아이는 어린이집 일과에 적응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그전까지 너무 울어서 때때로 중간에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첫 등원 이후 1년쯤 지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는 아직도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밥을 안 먹고 행사가 있는 날마다 많이 운다. 그래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먼저 장난을 칠 줄도 안다. 또래 사이에서 늘 혼자 떨어져 있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슬쩍 따라 해 보기도 한다.
이러니 어린이집을 옮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고 긴 적응 기간을 거쳐 이제 어린이집을 편안하게 느끼는 아이에게 괜히 변화를 주어 힘들게 하는 게 아닐지, 그 힘듦이 득보다 실이 되는 게 아닐지. 서로 익숙한 친구들 틈에 내 아이만 낯설게 들어갔을 때 “어서 와” 하며 손을 잡아 줄 친구가 있을지.
사람들은 아이가 클수록 이사가 어렵다고들 한다. 어린이집보다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옮기는 게 더 힘들고, 하물며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옮기려면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옮겨야 한단다.
나는 그 어렵다는 고등학교 전학 문제를 종종 상담했다. 이사나 부모의 해외 발령, 진로나 친구 문제 등으로 전학을 고민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찾아올 때마다 각 상황에 따라 꽤 확신하며 전학을 응원하거나 만류했다.
그런 내가 지금 고작 만 2세 아이 어린이집 문제로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이렇게나 고민하고 있다.
나는 아이 의견을 들을 수 없다. 아이에게 각 선택의 장단점을 설명할 수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하며 각오하게 할 수도 없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며 아이를 설득할 수도 없다. 아이가 클수록 이사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아이가 있으면 이사하기 어렵다.
이런 고민을 알 리가 없는 아이는 오늘도 힘껏 울고 해맑게 웃는다. 아이를 보며 물어본다. “엄마, 복직해도 될까? 어린이집 옮겨도 될까?”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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