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교사 김혜인] 아이가 소아과 진료 대기실 의자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진료 순서가 되기 전까지 나도 옆에서 쉬면 될 텐데, 습관처럼 아이에게 장난을 쳤다. 병원에 비치된 상어 인형을 들고 아이를 향해 “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 상어다!!”하며 온갖 재롱을 부리니 아이가 “크키킥”하고 웃었다.
그러자 대기실에 있던 다른 아이가 내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자기도 놀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테지. 키즈카페에서도 내 아이와 놀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다가오는 일은 자주 있다.
나는 ‘좋아, 널 웃기고야 말겠어’ 하고 의지를 불태웠다. 내 아이를 비롯해 이 아이 저 아이에게 오두방정을 떨었다.
“널 웃기고야 말겠어.” 이 말이 본래 내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에 함께 근무한 음악 선생님이 이 말을 내 마음에 씨앗으로 심었다.
어느 날 나는 여러 선생님이 모인 자리에서 한 학생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내 수업 시간에 도통 웃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다른 수업 때는 어떤지 물었다. 학생의 성향인지 내 수업 문제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다른 수업 때도 거의 웃지 않아서 모든 선생님이 근심했다.
그 학생의 무표정함에 사기가 꺾인 경험을 이야기하던 자리에는 그 음악 선생님도 있었다. 그는 내가 만난 동료 선생님 중 가장 유쾌하고 재치 있었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의 밝은 기운으로 내 지치고 피로한 마음이 회복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 음악 선생님 수업 때도 그 학생은 잘 웃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널 웃기고야 말겠어!”라는 각오로 그 학생 앞에서 온갖 쇼맨십을 다한다고 했다. 어떤 날은 그 학생이 피식 웃기도 했다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잔잔히 울렸다. 그는 얼마나 좋은 선생님인가. ‘왜 저렇게 퉁명스러울까? 내 수업이 그렇게 별로인가? 나를 안 좋아하나?’ 같은 생각만 하던 자신을 반성했다. 내가 그 선생님처럼 유쾌한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학생 모습을 오해하며 괜한 자격지심에 빠지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그 후로도 그다지 유머 있는 교사이진 못했다. 내 천성이 거리가 멀었다. 나는 조용하고 진지하다. 잔잔하다 못해 지루한 걸 좋아한다. 내가 다른 학교로 떠나며 그 음악 선생님과 교류할 일이 점차 뜸해졌고, 그의 말은 그때 그 순간 이후로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육아 인생 3년이 되어가니 나는 어느새 “널 웃기고야 말겠어”라고 각오로 언제나 장난칠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출산 직후만 해도 산후도우미가 내 성품이 차분해서 아이를 잘 돌볼 거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아무리 까꿍 놀이를 해도 아이가 반응이 없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이는 웃음이 적고 그에 비해 아주 많이 울었으며 겁이 많았다. 무엇보다 나를 잘 쳐다보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친 다른 아이가 나를 더 오래 쳐다보았다. 어떤 날은 강아지를 보며 ‘저 강아지조차 내 아이보다는 나와 눈을 잘 마주치네’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나를 더 많이 바라보길, 더 많이 웃길 바랐다.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노는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며, 내 몸이 아이 전용 놀이기구인 양 아이를 안아 돌리고 엎고 달렸다.
겁이 많고 감각이 예민한 아이가 새로운 경험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은 일에도 신기하고 즐거운 듯 연신 과장하여 감탄사를 내뱉고 크게 웃었다.
처음엔 아이를 위해 노력하던 모습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점차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농담을 즐기고 힘든 경험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아이가 나를 변화시켰다. 나도 아이 마음 속에 "널 웃기고야 말겠어"라는 씨앗을 심고 싶다.
최근 아이가 낮 병동 치료를 받았을 때 주치의를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를 보며 “아이가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라고 한 뒤 곧바로 “그리고 어머님도요”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오는 2학기에 학교로 복직할 예정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교단에 서게 될까. 웃긴 선생님으로 설정해 볼까. 실패할 게 뻔하지만 호기롭게 도전해보고 싶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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