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저자: 지젤 사피로│역자: 원은영│이음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이번에 소개할 책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를 읽으면서, 결은 조금 다르지만 지난 202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성공한 덕후’ 줄임말)이 떠올랐다.
이 영화감독은 실제 한 아이돌 가수의 열성팬인 이른바 ‘덕후’였다. 영화는 이 가수가 성범죄자로 추락하면서 그에게 실망한 팬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때 인생 전부였던 우상을 향한 배신감과 동시에 자신의 응원이 범죄 동력이 됐을지 모른다는 죄책감도 담겨 있다.
결국 이들은 그 가수 팬이기를 그만두는 ‘탈덕’을 결심한다. 아무리 가수가 좋아도 그가 저지른 비도덕적 행위를 눈감아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 결심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럼 그가 부른 노래도 듣지 말아야 할까?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발표한 노래라면 평가가 달라질까? 창작물에 창작자의 비도덕적 행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이런 면을 감수할 만큼 예술적 가치가 있는 창작물이라면?
이 질문은 작가 도덕성과 작품 윤리를 동일시하느냐 분리하느냐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지젤 사피로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서 이와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질문과 논점을 다룬다.
이 문제는 일찍이 서구 문화계에서 인종차별 발언이나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보인 작가를 중심으로 논의됐다. 우리 사회에도, 한때 추앙받았으나 나중에 친일 행적이 드러나 평가가 엇갈린 작가들 사례가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한 세르비아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국제사회, 스웨덴 한림원, 문학계 등에서 한트케의 수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근에는 영화와 연극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부당한 행위와 권력 남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2020년에 성범죄 전력이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세자르상을 수상하자 프랑스 영화계와 여성 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상”이라며 항의했고, 한 여배우는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분노하며 퇴장했다.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거나 분리하는 태도는 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미국은 노예제 투쟁이나 제도적 인종주의에 맞서온 역사가 있어, 수정헌법 제1조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도덕성을 중시하는 세력이 강하다. 그래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뉘앙스를 풍기는 문화 자체를 무효화하는(캔슬 컬처) 급진적 입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프랑스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며 작가와 작품의 분리를 권하는 분위기가 더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작품은 자율적이며, 작가의 도덕성과는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세자르상 수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타인을 학대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피로는 결론에서 다시 한번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린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 에세이 목적은 명확한 답을 도출하기보다는 쟁점이 되는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피로는 작품을 검열하고 단호한 기준에 따라 거부하기보다는 “문화가 생산되는 장의 고유한 논리에 따라 상대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단, 판단할 때 유의해야 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작품이 특정 집단이나 출신, 성별 또는 성적 기호를 이유로 혐오를 선동하고, 물리적 또는 상징적 폭력을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번역가 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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