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해림, 영화 '로비' 진프로 役
"드라이브를 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인간 강해림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싶어요. 강아지랑 동물들을 너무 좋아해서 훈련사 자격증도 따보고 싶고. 한 번도 그러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저를 좀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강해림은 최근 서울 중구 수표동 마이데일리 사옥에서 영화 '로비'(감독 하정우)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이데일리와 만난 강해림은 스크린 데뷔작 '로비'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윤 인터랙티브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 배우이자 연출가인 하정우가 '롤러코스터'(2013년), '허삼관'(2015년) 이후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강해림은 극 중 드라이버 입스로 슬럼프에 빠진 프로 골퍼 진프로 역을 맡았다. '신입 로비 팀'의 하정우, 김의성, 이동휘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자신이 구축한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했다.
이날 강해림은 "재작년에 촬영이 끝나고 많이 쉬고 있었는데 영화가 개봉하니까 너무 힘이나고 좋았다"며 "이번에 무대인사 문화를 알게돼서 너무 신기하다. 무대인사 스케줄마다 첫 줄에 앉으면서 함께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강해림은 웹드라마 '아이돌 권한대행'으로 데뷔, KBS 예능 '연애의 참견'에서 재연배우로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이후 배우 김고은을 발굴해 낸 영화 '은교' 정지우 감독의 안목을 통해 넷플릭스 드라마 '썸바디'에 600:1의 경쟁력을 뚫고 캐스팅됐다. 천재 개발자를 연기했던 강해림은 이번에는 슬럼프에 빠진 프로 골퍼 진프로로 스크린 데뷔에 나섰다.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자신을 본 묻자 강해림은 "많이 부끄러운게 컸고, 좀 무서웠다. 그래도 엄마가 너무 좋아하셔서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며 수줍은 듯 전했다. 하지만 역시 "스크린에 나오니까 훨씬 더 섬세하게 잡힐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상한 '쪼'라고 하지 않나. 표정이나 이런 것들이 조금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스킬이 뛰어난 배우가 아니라 연기 하느라 바빠서 섬세하게 신경쓰지는 못했다"며 꼼꼼히 차이점도 짚었다.
인지도가 많이 높지 않은 배우를 원하던 하정우 감독은 강해림이 출연한 '썸바디'를 보게 됐다. 진프로처럼 투명하고, 연기에 '쪼'가 있지 않으면서 기술적으로 뛰어나진 않지만 캐릭터에 이입해서 연기할 수 있는 배우. 그렇게 신인배우 강해림은 '로비'의 출연을 제안받고 함께하게 됐다.
이와 관련 강해림은 "하정우 감독님은 진프로가 골프선수처럼 보이기를 가장 많이 원하셨다. 연기적인 디렉팅보다는 골프 스윙이나 폼에서 프로의 느낌이 나기를 바라셔서, 연기 디렉팅보다 더 집중하셨다. 그러다보니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인지도가 없는 나를 원하셨던 것 같다"고 겸손히 말했다.
그러면서 "연기 디렉팅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배우들끼리 다 모여서 전체 리딩은 총 10회 정도, 개별 팀 리딩을 30회 정도 했다. 그걸 계속 반복하는 와중에 조금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을 해주셨다"며 "대사를 훨씬 편한 말이나 더 많이 쓰는 말로 수정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수정하라고 하셨다. 덜 갔으면 좋겠는 부분, 더 갔으면 좋겠는 부분도 모두 말하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음, 사실 진프로 캐릭터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반영되지는 않았어요. 그냥 기존 대본에 있던 대사들이 오히려 저한테 더 편했고, 저의 말로 바꿨을 때는 그 캐릭터가 깨질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많이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른 캐릭터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웃길지 의견을 진짜 많이 내셨고 그게 반영도 좀 됐거든요."
'로비'에는 강해림을 비롯해 하정우, 김의성,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까지 지금 이 시점 가장 핫하고 신선한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접대가 처음인 '신입 로비 팀'과 접대가 일상인 '베테랑 로비 팀'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방식의 로비를 펼친다.
이 가운데 강해림은 하정우, 김의성, 이동휘와 함께 '신입 로비 팀'에 속했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한 강해림은 "리딩을 워낙 많이 했다 보니 현장에서 그렇게 막 걱정이 되거나 했던 것도 전혀 없었다. 그분들은 대본에 나와있는 글을 그냥 진짜로 만들어버리시는 분들이나. 나는 그냥 감탄도 많이 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대본을 많이 읽었기에 세 사람의 연기에 더 감탄했다. 강해림은 그 백미로 최실장(김의성)이 벙커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꼽았다. 실제로 크게 넘어졌지만 NG가 아니라 영화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웃기는 신'으로 남았다. 대본에는 그냥 문장, 그냥 상황이었지만 행동과 제스처, 몸짓으로 웃음과 리얼함을 더했다.
"세 분의 에너지에 밀릴 걱정이요? 그런 걱정이 들기는 했어요. 다행히 진프로라는 인물 자체가 먼저 나서서 상황에 끼어들거나,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게 거의 없잖아요. 보통은 많이 듣고 있고 그냥 그들의 행동에 리액션으로 답해요.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나 존재감에 대한 어려움이 크지는 않았어요."
강해림의 진프로는 세 배우와의 호흡 속에 탄생했다. 진프로에 대한 강해림의 깊은 고찰도 함께했다. '로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진프로가 아버지와 통화 뒤 다시 세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유를 물었다. 사업으로 벌어온 상금을 날릴 정도로 무능했지만, 딸을 접대 라운딩에는 내보내지 않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를 확인한 진프로는 제발로 그 현장으로 돌아가 당차게 '소원게임'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 강해림은 "진프로는 세상 물정을 몰라 접대 라운딩에서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최실장 같은 사람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항상 엄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아버지가 이때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자리를 막아줬던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직접 물어봤을 거다. 그리고 아버지의 노력 덕에 위험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때 진프로는 드라이브 입스 때문에 드라이브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냥 시원하게 날려버리자. 나 한 번 쳐봐야겠다. 어차피 이 인간들 지긋지긋하고 이 자리 망해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또 드라이브를 날리고 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소원으로 그 자리를 파하고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진프로의 드라이브 입스에 대해 "진프로는 드라이브를 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상태였다. 실제 프로님들도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라고 말씀하시더라"라며 "두려움과 어려움이 생겨서 못 치는 경우가 많다는데, 진프로도 그랬다. 그런데 그런 분노 게이지가 쌓이면서 드라이브를 칠 수 있겠다는 확인이 생긴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어찌 보면 진프로의 드라이브 입스는 '로비'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진프로가 창욱과 라운딩에 나갈 결심을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비'의 끝은 드라이브 입스를 극복한 진프로가 장식한다. 고난이자 좌절이자 극복의 대상, 강해림에게도 이런 '드라이브 입스'가 있었을까.
강해림은 "내 인생에서, 당연히 나도 그런 '드라이브 입스'가 있었다. 내가 올해 서른인데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 누구나 다 힘든 시기가 있지 않나. 나는 그때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가 내 인생의 '드라이브 입스'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 시기는 강해림의 공백기이도 하다. 2022년 '썸바디' 이후 '로비'가 개봉하기까지 강해림은 3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신인배우로서는 다소 긴 시간이기도 하다. 강해림은 "3년 동안 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미팅을 하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크게 뭘 하려고 하기보다는 계속 버티고 견뎠다"며 "성격이 우유부단한 게 있다. 조금 더 활동적이고 도전적이고 겁도 없었으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미소 지었다.
그렇게 스스로 '드라이브 입스'라 꼽았던 20대 중반과 후반을 무사히 거쳐왔다. 불안의 시기를 오랫동안 겪었고 많은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냈다. 스스로 그때를 "해탈을 한 것 같다. 마음이 편해졌다"라고 말할 줄도 알게 됐다. 그리고 1996년 생, 올해 강해림은 한국나이로 30살이다. 그렇다면 강해림에게 30살이란 인생의 2막 일지, 또 다른 불안과 고민의 시작일지 궁금했다.
이에 강해림은 "이제 '내가 잘될 거야!'라는 기대가 아니라 '내가 잘되지 않아도 내 입에 풀칠은 하고 살지 않을까'하는 평온함이 생겼다고 할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라고 덤덤히 답했다.
"계기가 있었는데 제 배우라는 직업 때문인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고 거절을 많이 당한다고 다들 이야기하시잖아요. 오디션을 수백 번 봤는데 다 떨어졌다고. 그런데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해탈한 것 같아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두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로비'는 2023년 9월 촬영을 시작, 같은 해 12월 마쳤다. 작년 개봉 예정이었지만 조금 미뤄져 올해 베일을 벗었다. 강해림은 '로비' 촬영을 마친 뒤 2024년 독립영화 한 편을 촬영하고 다시금 휴식기를 가졌다. 긴 기다림 끝에 '로비'가 개봉한 만큼 에너지도 얻었다. 그렇게 2025년, 강해림의 서른 살이 시작됐다.
강해림은 "올해는 그냥 너무 하고 싶은 작품 딱 하나만 더 하면 좋을 것 같다. 뭐든 다 좋다. 그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역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랑 일을 해보고 싶다. 그게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작품 때문에 미팅을 했을 때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감독님, 그런 상대 배우를 만나서 일하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로비'의 제 점수라니, 너무 어려워요. 사실 계속 고민하고 자신이 없을 때라 점수가 굉장히 낮거든요. 그래도 스크린에 나온 걸 보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10점 만점에 5점이요. 원래는 2, 3점이었는데 조금 올랐어요. 그중에서도 정말 엄청나게 행복하게 촬영했던 제일 마지막 장면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고, 연기라기보다 찍으면서 너무 행복했거든요. 정말 행복했어요."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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