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지난주 전남 화순에서 풍력발전기 타워가 휘어진 사고가 발생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의명분 뒤에 가려진 현실적 과제를 보여준 사례다.
이 사건은 풍력발전 산업이 해결해야 할 안전성과 품질관리 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린에너지로 전환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음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최근 태안군, 전남 신안, 인천시 등 여러 지자체가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 계획을 발표했다. 탄소중립으로 전환과 친환경 에너지 확보라는 세계적 흐름에 우리나라도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은 해상풍력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며, 특히 서남해안은 풍부한 바람 자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해상풍력 설치량은 중국의 0.4%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국은 풍력에너지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단편적으로 2021년 한 해에만 유럽 전체 설치 수준의 5배가 넘는 규모를 새로 건설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원전 15기에 맞먹는 해상풍력 설비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기술력 확보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야심찬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풍력산업이 직면한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풍력 터빈 기술 격차 해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형 터빈이 상용화되고 있으나, 우리 업체들은 그 절반 수준의 용량 개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블레이드 설계·제작, 제어 시스템, 대용량 발전기 등 핵심 부품에서의 기술력 부족은 국내 산업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국산 설비의 국산화율은 30~40% 수준에 불과하며, 핵심 부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체계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실증 기회 부족으로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을 축적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 문제를 넘어 에너지 안보와 미래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두 번째 과제는 중국 의존도 완화다. 우려되는 부분은 국내 시장이 중국산 기자재에 잠식되는 현상이다. 최근 진행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전기 공급가격에 높은 비중을 두는 평가 방식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설비가 선호되고 있다.
여타 선진국 대응은 우리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은 자국산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세액공제를 강화했으며, EU는 최근 중국산 터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기요금 인상 억제에만 치중하여 국내 기업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고 있어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 번째 과제는 지역 상생모델 구축이다. 풍력발전 사업은 단순한 전기 생산을 넘어 지역사회와 공존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천시 공공주도 풍력단지는 장기간에 걸쳐 연간 수백억 규모 인센티브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계획으로 지역경제에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민과 어업인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 운영을 통해 수용성을 높이고, 발전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돼야 한다. 집적화단지 제도는 지역 주도형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다. 지자체가 입지를 발굴하고 민관협의회를 통해 수용성을 확보한 후, 전력망 연결과 같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네 번째 과제는 안전성과 품질관리 강화다. 이번 풍력발전기 타워 사고는 수십억 원이 투입된 고가 설비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다. 품질과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해상 환경은 강한 바람과 염분, 파도 등 극한 조건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품질관리가 기본 조건이다.
이러한 안전사고는 단순한 시설 파손을 넘어 지역 주민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다. 철저한 품질관리 체계 구축은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본 전제조건이자, 지역주민과의 신뢰 관계 구축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다섯 번째 과제는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이다. 사업자 선정 기준에서 현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격 요건 외에도 국내 제품 사용 비중, 기술 개발 성과, 안전성, 국산화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한다. 정부의 장기적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 양성은 기술 자립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린에너지 산업은 터빈 제조뿐 아니라 기초구조물, 해저케이블, 변전설비, 설치선박, 유지보수 등 다양한 연관 분야를 포함하는 복합 생태계다. 전 분야에 걸친 균형 있는 성장 없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무탄소 전원의 확충은 불가피하며, 동시에 새로운 산업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단순히 외국 기술에 의존한 채 시설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에너지 전환의 주역이 될 수 없다.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래 에너지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풍력발전은 우리나라가 관심을 갖고 앞으로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중요한 분야이다. 국내 기술 역량 강화, 중국 의존도 완화, 지역 상생 모델 구축, 안전성 확보, 정책 개선이라는 과제들을 해결해 나간다면, 풍력발전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산업 성장을 동시에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는 기술력뿐 아니라, 그 기술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고 발전시키려는 의지이다. 정부, 기업, 학계,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풍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도전에 함께 뛰어들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나겠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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