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주거 본질성 외에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돼 단기적 시세 변동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부동산은 수십 년간 세대를 이어 사용되는 자산이기에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주택은 인간 기본권인 거주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자산이다.
최근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적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정책 강화로 건물 환경 영향이 주목받고 있다. 건물 부문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약 40%, 온실가스 배출의 약 30%를 차지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ESG 요소를 고려한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운영비용 절감, 임차인 만족도 향상, 자산 가치 상승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글로벌 투자자는 이미 ESG 성과가 뛰어난 부동산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부동산 가치는 더 이상 위치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지속가능성은 미래 부동산 시장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EDGE 올림픽’은 친환경 부동산의 혁신적 사례다. 1990년에 건축된 오피스 건물을 2018년에 완전히 리모델링한 지속가능한 건물이다.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관리 시스템으로 일반 오피스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낮으며, 건물 사용자 건강과 웰빙을 평가하는 국제 인증 ‘WELL’의 최고 등급 플래티넘을 네덜란드에서 첫 획득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을 보유했다. 2만8000개 이상 센서로 수집된 데이터는 건물 운영 최적화에 활용되며,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초기 비용 증가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운영비용 절감과 자산가치 상승이라는 이점을 가져왔다.
EDGE 올림픽은 리모델링 후 높은 입주율을 기록했으며, 유사 위치 일반 오피스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었다. 건물 운영 비용 절감과 높은 임대수익으로 투자 수익률도 크게 향상됐다. 지속가능성이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와 직결됨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장기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는 이러한 건물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부동산 개발이 확산되면서 지속가능성을 측정하고 평가할 표준화된 지표의 필요성이 커졌다. 투자자는 객관적 기준으로 부동산의 ESG 성과를 비교하고자 했다. 개발자는 자신의 친환경 노력을 증명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미국에서 시작된 LEED, 영국에서 시작된 BREEAM, 호주의 그린 스타 등 다양한 친환경 건물 인증과 건강·웰빙에 중점을 둔 WELL, Fitwel 같은 인증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인증이 개별 건물의 환경성과를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2009년에 설립된 GRESB(Global Real Estate Sustainability Benchmark)는 한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회사가 소유한 모든 건물과 운영 방식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즉, 개별 건물이 아닌 기업 전체의 ESG 노력과 성과를 측정한다. 글로벌 투자자가 주도한 이 평가 체계는 현재 1800개 이상의 부동산 기업과 펀드가 참여하며 국제적인 ESG 평가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GRESB 평가는 조직 운영 측면과 성과 측면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친환경 정책, 경영진의 의지, 다양한 관계자들의 참여도를 확인하고, 더불어 실제 에너지 사용량, 온실가스 배출량, 물 사용량, 폐기물 처리 현황과 같은 환경적 성과와 세입자 만족도, 지역사회 기여 같은 사회적 성과도 함께 측정한다. 이렇게 다각도로 평가된 ESG 점수는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덕분에 GRESB는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투자자에게 투명하고 비교 가능한 ESG 데이터를 제공해 투자 의사결정을 돕고, 개발자와 운영자에게는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한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높은 평가를 받은 부동산은 자금 조달에 유리한 조건을 얻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으며, 부동산 산업의 지속가능성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바랑가루 사우스 쿼터’는 GRESB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5스타를 획득한 혁신적 프로젝트로 손꼽히고 있다. 대규모 복합 개발 단지로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모든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환경적으로는 100% 재생에너지 사용, 제로 웨이스트 달성, 최첨단 수자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고, 자연 채광과 통풍을 극대화한 패시브 디자인은 냉난방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거주 쾌적성을 높였다.
개발 초기부터 바랑가루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원주민 문화를 존중하는 디자인 요소를 포함했다. 지역 예술가 작품을 건물 곳곳에 배치하고, 전체 상업 공간의 약 15%를 사회적 기업과 지역 소상공인에게 우선 임대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추구하는 우수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 기준은 이후 경제적 성과로 이어졌다. 완공 후 주거와 상업 공간 모두 시장 평균보다 약 20% 높은 임대료에도 약 95% 이상 입주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GRESB 최고 등급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여 낮은 금리로 추가 자금 조달에 성공했으며, 장기적으로는 건물 운영 비용 절감과 자산 가치 상승이라는 이중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통해 부동산 분야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부동산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부동산 시장도 이제는 단기적 시세 차익보다 장기적 가치 창출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글로벌 투자 트렌드가 ESG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재산 증식 수단이라는 단편적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투명한 운영 체계를 갖춘 부동산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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