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헌 신문! 폐지 삽니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길에 울려 퍼지던 소리가 이제는 추억이 됐다. 낡은 창고 같은 건물, 쌓여 있던 고철 더미, 늘 그 자리를 지키던 주인의 모습. 단순히 폐품을 사고파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고물상은 실상 우리 생활 속 자원순환의 최전선이자 재활용 산업의 시작점이었다.
오늘날 자원순환은 글로벌 산업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립과 소각으로 끝나던 폐자원의 운명이 첨단 기술과 혁신적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원 고갈과 환경 위기 심화로 인해 버려진 자원은 이제 제2의 광산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셈이다.
첫 번째 진화는 재활용 공정의 스마트 자동화다. 산업 전반을 바꾸고 있는 이 기술 덕분에 과거 작업자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크게 달라졌다.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작업자가 분류할 수 있는 폐기물은 고작 2~3t에 불과했고, 위험한 화학물질이나 날카로운 금속 조각에 노출돼 연간 산업재해가 수백 건에 달했다.
그런데 벨기에 기업 코메트 트레이트먼츠(Comet Treatments)는 자체적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기계 학습 알고리즘과 3D 스캔 기술을 결합한 로봇 시스템을 만든 건데, 폐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면 AI(인공지능)가 즉시 재질과 부품을 분석하고, 로봇 팔이 정밀하게 구리 배선, 알루미늄 부품, 플라스틱을 분리해낸다.
결과적으로 AI를 적용해 98.4%라는 놀라운 회수율을 달성했는데, 이는 사람이 수작업으로 처리할 때의 60~70%보다 크게 향상된 수치다. 자원회수율 외에도 자동화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안전성인데, 작업자들이 더 이상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아도 되고, 24시간 연속 가동이 가능해져 처리량도 크게 늘었다.
두 번째 변화는 도시광산 개념의 등장이다. 도시광산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자체를 거대한 자원 재활용이 가능한 광산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버려진 휴대폰, 오래된 가전제품, 철거되는 건물 속에 숨어있는 귀금속과 희토류를 캐내는 방식이다.
스웨덴 볼리덴(Boliden)은 150년 역사의 유럽 최대 광산 기업이다. 전자폐기물 처리 기술에서 매우 앞서 있다. 칼도(Kaldo)라는 특수 제련 기술을 사용해 폐휴대폰, 컴퓨터 부품에서 구리와 귀금속을 효율적으로 분리해내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시설에서 생산되는 금의 40%가 전자폐기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사용되는 에너지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는데, 공정을 통해 기존 제품에서 금속을 회수할 때 필요한 에너지는 자연에서 자원을 채굴할 때의 단 1%에 불과하다. 환경 파괴도 없고, 희토류나 희귀금속처럼 특정 국가에 집중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 번째 주목할 혁신은 생명공학을 활용한 바이오마이닝이다. 특수 미생물을 이용해 폐기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기존 화학처리가 황산이나 시안화물 같은 독성 화학물질로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환경친화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JX금속(JX Nippon Mining & Metals)은 1980년대부터 전자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시작한 선구적 기업이다. 이 회사가 칠레 국영 구리회사와 공동으로 설립한 바이오시그마는 미생물을 이용한 구리 추출 기술을 상용화했다. 황산화박테리아라는 특수 미생물이 전자폐기물 속 구리를 선택적으로 녹여내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 기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면, 기존 바이오마이닝 방식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구리를 회수하고, 추출량 또한 30~50%수준까지 더 많은 구리를 추출할 수 있다. 사용되는 미생물은 자연 분해되므로 2차 오염이 없고, 특정 금속만 추출할 수 있어 고부가가치 금속 회수에 효과적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원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이같은 자원순환 혁신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연간 약 1500억 달러(207조450억원)라는 엄청난 돈을 자원 수입에 사용하고 있다. 구리를 비롯한 대부분 비철금속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전자폐기물 발생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적절한 재활용 체계가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18년 자원순환기본법을 제정하고, 2027년까지 폐기물 발생량을 20% 감축하고 순환이용률을 현재 70%에서 82%까지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통해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전 과정의 순환체계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해외 선진 사례처럼 자동화 기술, 도시광산, 바이오마이닝 같은 첨단 기술을 실제로 도입하고 상용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폐자원이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탄생하는 순환경제는 환경 보호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의 핵심이겠다.
이제 폐품수거소는 첨단 기술과 지속가능성이 만나는 미래 산업의 전초기지가 돼야 한다. 폐자원이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탄생하는 순환경제는 환경 보호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의 핵심이 되리라 확신한다. AI 로봇과 바이오 기술이 공존하는 혁신의 장으로 거듭나는 자원순환 산업이 한국을 자원 빈국에서 자원 강국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우리 동네 한구석을 지키던 고물상에서 시작된 작은 발걸음이 세계적 첨단산업으로 도약하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자원순환의 미래다. 추억 속 그 공간이 지금 첨단 기술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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