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여고 교사, 성표현 담긴 자료 나눠줘... "괜찮을 줄 알았다"
"Have you slept with your girl friend?"(너 여자친구랑 잤니?)
"Yes, I got to home plate."(응, 난 해냈어)
인천 B여자고등학교 영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학습 자료의 일부다. 자료 내용을 살펴본 아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 나갔을 때 추행을 당할 경우, 단어나 표현을 알면 상황을 피할 수 있으니 알아두라고 자료를 주셨다는데, 자료를 준 취지랑 실제 내용이랑 안 맞는 것도 많으니까요. 이걸 왜 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 A교사가 나눠준 학습 자료의 일부로 상체를 노출한 여성의 사진이 실려있다. ⓒ 이주연인천의 B여고에 재학 중인 박이지(17·가명)양의 말이다. 박양은 지난달 20일경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영어 선생님 A(61) 교사로부터 '데이트와 섹스에 대한 표현(Expressions about Dating/sex)'이라는 자료를 받았다. 박양 이외에도 총 12명의 학생들이 받은 이 자료에는 노골적인 성 표현이 담긴 영어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반에서 수업을 잘 듣는 학생에게만 수업 후 따로 나눠준 학습 자료였다.
그러나 이것을 학습 자료라고 보기엔 무리였다. 20페이지 가량 되는 자료엔 '내 여자친구는 나랑 섹스하고 싶어 하지 않아/그럼 혼자 해', '한 여자가 맨 가슴을 보여줬어', '그 책은 교체섹스와 그룹섹스에 관한 거라서 재미없었어', '나 하루 종일 달아올라 있었거든' 등의 표현이 있었다.
또 '100달러에 자기랑 섹스 한 번 하고 싶냐고 물었어' 등 성매매와 관련된 문장을 비롯해 '오럴섹스', '1단계는 키스, 2단계는 가슴 만지기, 3단계는 성기 만지기' 등 성적인 표현들이 나열 돼 있었다.
영어권에서 쓰는 성에 관련된 숙어의 해석, 단어 설명에 이어 빌 클린턴의 성스캔들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반신이 노출된 여성의 모습,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그림 등이 자료에 첨부되어 있었다.
자료 받은 학생들 "이게 뭔가 싶어 수치심 느꼈다"
학생들은 자료를 받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11일 오전, 인천 B여고를 찾아 자료를 받은 학생들을 만나봤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너도나도 응하겠다며 나섰다.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처음 자료를 받았을 땐 아무 생각 없었다는 그들은 이후 자료가 문제 되자 꼼꼼히 읽어봤다고 했다. 김명선(17·가명) 양은 "이게 뭔가 싶었다"며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평소 A교사의 언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명선 양은 "방학 중에 나오라고 따로 연락 온 적이 있고, 1박 2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도 했었다"며 "그때 선생님이 꽃도 보고 얘기도 하자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교사는 "전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대질심문해 보면 알 것"이라 밝혔다.
반면 학교 측 관계자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면 좋을 것이라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에 대해 말을 하다가 와전된 것"이라며 "학생에게 '섹시하다'라는 말도 했다는데 이 역시 한 학생에게 '착하게 생겼다'고 칭찬을 하자 다른 학생이 자신은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 과정에서 나온 답변이었을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모두의 입장이 갈리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며 "학생들에게 이런 자료를 나눠준 것 자체가 명백한 성희롱"이라고 힐난했다.
▲ B여고의 정문. ⓒ 이주연해당 교사 "사회 개방돼 수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두 명의 학생은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뒤 A교사로부터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박이지(17·가명)양은 "선생님이 우리를 따로 불러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책을 보여주며 '자살한 사람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며 "불안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정현(17·가명) 양은 "보도가 된 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셔서 '너희들에게 실망했다고, 앞으로 말을 시키지 말라'고 했다"며 "그렇지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는 하셨다"고 밝혔다. 박이지 양은 "선생님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11일 학교에서 만난 A교사는 "본래 꽃, 역사 관련 자료들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곤했다"며 "아이들이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방을 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기에 자료를 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적으로 완전 개방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이 정도는 수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생각만큼 순수한 것은 아니라 충격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롱맨 문화사전, 옥스퍼드 문화사전 등의 사전과 영어책에서 발췌해서 짜깁기 한 것으로 이미 시중에 다 나와 있는 책"이라면서도 "앞으로는 교과서와 관련된 것 외에는 일절 자료 등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 A교사가 나눠준 자료의 일부 ⓒ 이주연학교 측은 지난 달 말 교실에서 인쇄물을 발견한 이후 지난 5일 인사자문위원회를 열어 A교사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다.
학교 측 관계자는 "성실의 의무와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기에 처분을 했다"며 "공립학교에서는 경징계 조치밖에 내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중징계는 교육청에서 내릴 수 있다는 것.
학교 측은 "차후 수업 교재는 물론 학습 자료를 배부할 때에도 상부에 보고를 거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8일 장학사를 파견해 사건 정황을 파악하고 오는 12일 2차로 학교를 방문해 감사할 예정이다.
이주연 (ld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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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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